
[더팩트ㅣ정소영 기자] 주요국들이 '핵추진잠수함'(핵잠)을 둘러싼 전략적 셈법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핵잠 변수가 올해 동아시아 안보 지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가시화됐다는 평가다. 당시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잠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해주면 좋겠다"고 공개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기존)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져 북한이나 중국 쪽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연료 공급을 허용해주면 저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반도 동해, 서해의 해역 방어에 활용하면 미군의 부담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핵잠 논의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불거졌던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4000톤(t)급 핵잠 3척을 도입하는 구상이 추진됐지만 외부에 알려지며 중단됐고,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도 미국의 반대에 부딪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현재 정부는 배수량 5000t급 이상 핵잠을 2030년대 중반 이후 4척 이상 건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핵잠 동력기관인 소형 원자로 개발과 연료인 농축 우라늄 확보 등의 기술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와 관련, 지난달 16~22일 미국과 캐나다,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미국과 핵잠 협력에 관해 양측의 별도 협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핵잠에는 20% 이하의 저농축 연료를 사용하는 원자로 탑재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간 핵잠 관련 별도 협정을 맺는 방안이 추진되기로 하자 북한은 군사적 과시로 응답했다. 북한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700t급 '핵동력 전략유도탄 잠수함 건조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핵잠 추진에 대해선 "우리 국가의 안전과 해상주권을 엄중히 침해하는 공격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일각에선 핵잠을 둘러싼 논의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 전반으로 확산되며 주변국 전략 경쟁의 영향권에 놓이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일본은 핵잠 논의에서 한 발짝 나아간 모습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최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핵잠 도입 여부와 관련해 "어떤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고 억지력과 대처력 향상에 필요한 모든 사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4일 정례브리핑에서 "다카이치 정부는 비핵 3원칙 수정 논의를 진행하며 핵잠 도입을 시사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핵잠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기에 주변국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건 당연하다"며 "일본의 경우는 현재 중국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안보적 상황을 고려해 (핵잠을) 언급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핵잠은 장기간 잠항이 가능하고 작전 반경이 넓어 해상 감시·추적 능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 자산으로 꼽힌다. 한국이 핵잠을 확보하면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활동을 효과적으로 추적·억제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핵잠 논의가 올해 동아시아 안보 질서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동아시아 군비 경쟁이 촉발된 건 분명하다"며 "직접적 원인은 미국의 방위비 분담 등이고 그런 점에서 핵잠에 대한 직접적 거론은 한국이 트리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동북아에서 군비 경쟁을 피하기는 어려운 국면"이라고 덧붙였다.
핵잠 논의의 제도화와 안보적 파장이 서로 다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내년부터 한미 간 핵잠 협의는 상당히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지만 협정 체결과 실질적 성과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만 북한의 핵잠 개발은 단기간 내 가시적 진전을 보일 수 있어 역내 군사적 긴장은 오히려 먼저 고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