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이혜훈 전 의원이 이재명 정부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지명을 두고 정치권에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이 지명자를 신속하게 제명한 뒤 '배신자' '부역자' 등 표현을 써가며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의 탕평 인사와 대비되면서 스스로 중도 외연 확장을 어렵게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한 데 대해 파격이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지명되기 직전까지 국민의힘 서울 중구성동을 당협위원장을 정부 핵심 요직인 경제 부처 수장으로 발탁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인사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몸담았던 이 후보자가 '경제통'으로 유명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수정당의 대표적 경제전문가였다.
이 대통령이 대선 전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라 중도보수"라고 밝힌 견해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다. 지난 4월 대선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 묘역을 방문했던 이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박태준 전 총리의 묘를 참배하며 통합 의지를 드러냈고, 취임 후에는 보수정당 출신 권오일 국가보훈처 장관을 발탁했다. 또한 전 정부 인사였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했다.
표면적으론 청와대가 진영과 관계없이 유능한 인재를 고루 등용한다는 실용에 방점을 찍었지만 이번 파격적 인사가 중도·보수를 겨냥한 외연 확장의 포석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예측하기 힘든 파격적 인재 기용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 발신했다는 시각인데, 결국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성 보수의 고립을 노린 전략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속전속결로 이 후보자를 제명했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의 통합형 등용론과 대비되면서 오히려 국민의힘이 스스로 외연의 문을 좁혔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언근 전 부경대 초빙교수는 통화에서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에 대해 비난할 수 있어도 반사적 반응을 보인 건 당이 포용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중도층에게 줄 수 있다"라고 짚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이 전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세울 때가 아니"라고 언급한 점도 궤를 같이 한다. 그는 "탈영병 목을 치고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보수 진영이 국민께 매력적인 비전과 담론을 제시해 희망을 드려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중도 확장과 배신의 정치는 별개라는 인식이다. 정치적 동지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준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는 조치가 우선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전남 해남군 일정 도중 기자들과 만나 "중도 확장은 중도 확장대로 하되, 당을 배신하고 당원들 마음에 상처 주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했다.
한 야권 인사도 통화에서 "본인(이 후보자)이 과거 그렇게 비판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참모가 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을 넘어선 정치적 금도를 저버린 해당행위"라며 "당의 제명 결정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과 당원들에게 칼을 꽂은 이 후보자의 결정은 외연 확장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정치인으로서 신의와 소신 등 문제로 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내부는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다들 세게 한 방 맞은 것 같다는 말들을 많이 하더라. 저쪽(민주당)보다 우리가 더 이 후보자를 잘 안다. 이 후보자는 험난한 청문회를 거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은 이 후보자를 겨냥해 "입신양명에 눈이 멀어 이제껏 지지해 준 국민과 당을 배신하는 변절자"라고 비난했다. 정부를 향해서도 "이 전 의원 발탁에 어떤 정치적 고려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속히 지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