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풀뿌리③<끝>] 수도권도 험지도 "지구당 부활해야"…한계와 대안은
  • 김시형, 이하린 기자
  • 입력: 2025.12.08 00:00 / 수정: 2025.12.08 00:00
'차떼기' 논란 속 지구당 폐지 20년
법적·재정적 제약 속 지방당 신음
금권선거 우려 해소 관건…공약 개발도 숙제
정당의 지역 조직을 떠받치던 지구당이 사라진 지방 정치 현장은 법적·재정적 제약 속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워크숍에 참석한 의원들의 모습. /뉴시스
정당의 지역 조직을 떠받치던 지구당이 사라진 지방 정치 현장은 법적·재정적 제약 속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워크숍에 참석한 의원들의 모습. /뉴시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은 다시 '공천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명목상 공천권은 시·도당에 있지만 결정적 '키'는 중앙당이 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지방당은 중앙당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선거 때마다 반짝 동원되고, '팽' 당하는 설움도 반복된다. 그럼에도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까. 이유 있는 침묵이 계속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 '지역 정치'가 만개하기 위해선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더팩트>가 3편에 걸쳐 그 현실과 대안을 총 3편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김시형·이하린 기자] 정당의 지역 조직을 떠받치던 지구당이 사라진 지 20년. 지방 정치 현장은 법적·재정적 제약 속에 신음하고 있다. 지역위원회와 당원협의회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지구당 부활 필요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구당은 1962년 정당법 제정과 함께 만들어진 정당의 하위조직으로, 지역 정치 활성화를 목적으로 국회의원 지역구 단위에 설치됐다. 지역 당원 관리와 공약 개발, 중앙당과 지역 간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했으며, 선거 사무실 기능도 겸했다.

그러나 16대 대선 당시 이른바 '차떼기' 사건 등으로 불법 정치자금 전달 통로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2004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정당법 개정으로 기존 당지부는 시·도당 체계로 전환됐고, 지구당 소속 인력과 당원도 중앙당과 시·도당으로 편입됐다.

문제는 지구당 폐지 이후 지역위원회·당원협의회가 후원금 모금과 인력·사무실 운영이 모두 제한돼 실질적 지역 조직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수도권과 험지를 막론하고 지역 관계자들은 지구당 부활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 A 지역위원장은 "사무실도 인력도 제대로 갖출 수 없는 상황에서 지구당 부활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했다. 수도권 B 지역위원장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그 뿌리인 지구당이 없다면 말뿐인 민주주의"라며 지구당 부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같은 지역구 관계자도 "지구당이 없는 구조에서 지역위는 시·도당의 '곁가지' 같은 존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여야 대표는 지난해 총선 이후 지구당 부활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더팩트DB
여야 대표는 지난해 총선 이후 지구당 부활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더팩트DB

여야는 지난해 총선 이후 지구당 부활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정치 신인과 청년, 원외 인사들과의 격차를 줄이고 현장 민심과 밀착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구당 부활이 정치개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도 "지구당 부활을 우선 처리하자"며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최근 정청래 대표가 추진 중인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의 보완책으로 지구당 부활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지역 조직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여전하다. B 지역위 관계자는 "현역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어 큰 기대는 없다"며 "경쟁 상대가 사무실을 내고 조직을 꾸리는 것을 껄끄러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금권 선거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지구당 부활에 대한 반대 의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국민의힘 중앙당 관계자는 "촌지 문제가 다시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원내 지역구의 경우 현역 의원이 시·도당위원장 및 지역·당협위원장을 겸직하는 현 구조에서는 부정부패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에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현재처럼 사실상 '야매'로 운영되는 지역 정치보다, 지구당이라는 법적 인격을 부여해 투명하게 통제하는 것이 오히려 부패를 줄이는 길"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당직자 C 씨도 "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우려는 지구당이 없어도 계속돼 온 사안"이라며 "지구당을 양지화하면 특히 당 기반이 약한 지역의 조직활동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역위원회와 당원협의회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지구당 부활 필요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더팩트DB
지역위원회와 당원협의회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지구당 부활 필요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더팩트DB

중앙당 연구원만으로는 세부 지역 맞춤형 정책 수립이 어려운 만큼, 지역 특색에 맞는 정책 정립을 위해 지구당 부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홍재우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여의도연구원이나 민주연구원이 세부 지역 정책까지 설계하긴 어렵다"며 "민주당 부산시당의 '오륙도연구소'처럼 지방에도 자체 싱크탱크가 만들어져 있지만, 중앙당 보조금이 지역 연구소에 잘 배분되지 않아 사실상 운영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역 공약이 중앙당 의제에 맞춰 선거 직전에 급조되는 구조도 반복되고 있다"며 "각 지역이 자기 색깔에 맞춰 정책을 발굴할 수 있도록, 지역이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희순 참여연대 권력감시1팀장도 "지방선거에서 지역 고유의 특색을 살린 정책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작은 단위에서 정책을 실현할 여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지구당 부활과 함께 중앙당을 반드시 서울에 두도록 하는 조항도 삭제해 지역 정당이 활성화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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