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성남=정소영 기자] 올해 한반도는 분단 80년을 맞았다. 해마다 수많은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편입되고 있지만, 정착의 현실과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복잡하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법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여전히 호기심의 대상 또는 경계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같은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정체성은 여전히 시험대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여 년 전 한국에 들어온 정서윤 유니피벗 대표는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부여하는 한국인과 탈북민의 경계, 탈북민에게 마이크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구조적 현실에 대해 "탈북민을 바라보는 사회적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팩트>는 지난달 14일 경기 성남의 한 모처에서 정 대표를 만나 탈북민을 향한 한국 사회 시선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통일이 왜 필요할지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다음은 정 대표와의 일문일답.

-한국에 오게 된 경위를 독자들에게 소개바란다.
1998년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넘어갔고 4년간 중국 곳곳을 전전하며 지내다 2002년 6월 한국에 도착했다. 이어 같은 해 9월 하나원 과정을 마쳤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로 접어들며 많은 주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렸다. 우리 가족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져 1997년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먼저 중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연락이 끊겨 할아버지와 삼촌이 뒤이어 찾으러 갔다가 역시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들이 하나 둘씩 행방이 묘연해져 이모가 마지막으로 중국에 건너갔고, 그 과정에서 중국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판단한 남은 가족들 모두 중국으로 넘어갔다.
-한국에 정착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달라졌나.
많은 탈북민들이 그렇듯 나 역시 한국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중국에 있는 동안 대북 라디오를 통해 ‘한국은 모든 게 좋다’, ‘정착금도 많이 준다’, ‘집도 준다’,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도 가면 화려한 삶을 살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품고 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임대주택에 배정돼 들어갔을 때 상상했던 집과는 너무 다르고 낡고 좁았다. 또 도시의 차가운 분위기 속 이웃 간 교류가 거의 없는 환경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학교를 다니고, 복지관을 오가며 선생님들과 연결되고 친구가 생기면서 조금씩 관계망이 만들어졌다.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배정된 초등학교에 갔을 때 담임선생님이 ‘북한 출신이라는 걸 밝힐지 말지 고민해 보라’고 했던 순간도 기억난다. 죄를 짓고 온 것도 아닌데 왜 숨겨야 하나 싶어 솔직히 밝히기로 했다. 하지만 내 이야기가 퍼지자 아이들은 호기심과 신기함, 놀림이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라는 충격을 경험했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 북한 출신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 사회 구조, 차별·오해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싶어졌고 북한학 석·박사 과정을 선택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탈북민이 ‘분단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수혜자’라는 점이다. 피해자인 이유는 분단이 만들어 낸 교육 공백, 사회적 낯섦, 편견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혜자인 이유는 ‘북한 출신’이라는 점이 환경에 따라 하나의 장점이 될 수도 있어서다. 예를 들어 해외 유학을 간다면 폐쇄 국가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특별함이자 관심의 이유가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탈북민 보는 시선’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탈북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면서도 마음속에선 여전히 ‘외부에서 온 사람’으로 구분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학계 자료에도 한국 사람을 ‘남한 선주민’, 우리를 ‘북한이탈주민’(탈북민)으로 구분해 부르는 경우를 봤다. 탈북민은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민으로 간주되는데 언어와 인식 속에서는 ‘한국 사람’과 ‘탈북민’으로 나뉘어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부분을 목소리 높여서 이야기할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탈북민들 중에도 많이 없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탈북민을 연구한 사람들은 대다수 한국 사람들이다. 관련 분야 박사 학위를 소지하거나 해외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연구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 시각에서 탈북민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을 뿐이지 진짜 북한에서 온 사람에 의해서 탈북민의 목소리가 이 사회에 많이 알려진 적이 거의 없다. 만약 탈북민이 이 구조를 바꾸려면 한국 사회를 충분히 이해하고 ‘파워’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까지 남한 중심 시각으로 쓰인 연구나 정책의 문제점을 ‘그 방식은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탈북민은 기존 권력과 제도에 순응해야만 출세의 기회를 얻는다.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다수 의견과 분위기에 순응하는 문화가 강한 만큼, 학연·혈연·지연 없이 홀로 서 있는 탈북민이 ‘당신들은 우리를 외부인으로 취급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묻고 싶다. ‘과연 한국 사회는 탈북민에게 말할 마이크를 쥐여줬는가.’ 지금까지 그 마이크를 쥐고 있는 탈북민이 거의 없었다고 느낀다. 국회의원이 된 탈북민 출신 인사들조차 자리에서 버티기 위해 ‘대한민국 만세’를 끊임없이 외치며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구조 속에 있다. 그 모습은 탈북민 모두가 마음속에서 상시적인 ‘사상 검증’을 받는다는 압박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많은 탈북민이 자신을 숨기고, 조용히 사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 시선의 문제라고 본다.
-그럼 이 시선은 무지·편견·두려움 중 어떤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보나.
기본적으로는 무지가 가장 클 것 같다. ‘안다는 것’은 되게 어려운 것 같다. 단순히 사람을 만나서 ‘안다’라는 것도 아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국 사회가 우리를 받아줘서 정말 고맙다.
-탈북민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시급한 변화는 무엇일까.
가장 시급한 변화는 탈북민을 바라보는 사회적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인식 틀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정책을 부분적으로 손본다 해도 실질적 변화는 만들기 어렵다. 결국 핵심은 시각의 전환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북한이탈주민, 탈북민이라는 명칭 대신 북향민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것은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탈북민에게 요구된 역할은 대부분 ‘북한 체제가 얼마나 열악한지 증언하는 사람’,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존재’에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탈북민을 단순히 분단 체제의 부산물로 소비하는 시각이며,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들을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탈북민은 남북 두 체제를 모두 경험해 본 유일한 주체다.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전체를 살아본 사람은 탈북민뿐이다.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은 각각 반쪽의 체제를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탈북민은 분단의 피해자라기보다, 남북을 연결하고 이해를 확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적 자산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그들을 ‘북한의 문제점을 증명하는 역할’에만 묶어둔다면, 한국 사회는 이 귀중한 자산을 활용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손해 보게 만드는 셈이다. 탈북민을 체제 경쟁의 증표가 아니라, 남북을 잇는 지식·경험의 주체로 인정하는 프레임 전환이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하>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