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미국의 승인을 기다리는 관료적 사고로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기상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상황과 조건에 따른 한미 연합군사훈련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직후다.
정 장관의 발언은 한미 연합훈련 조정도 정부 주도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에 따라 내년 3~4월로 예상되는 북미 회담을 고려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정 장관은 북미 회담 실현을 위해 한미 연합훈련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장관은 2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된 '한반도 평화경제 미래비전 국제세미나'에서 "미국의 승인과 결재를 기다리는 관료적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게 한반도 문제의 특징"이라며 1988년 11월 18일 김대중 정부 주도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일화를 소개했다.
정 장관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 있었고, (클린턴) 미 대통령이 한국을 다녀간 뒤로 (금강산 관광 첫 배) 출항 날짜가 늦춰져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그러나 김 대통령은 바로 출항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지시는 클린턴 대통령이 일본을 떠나기 전 금강산 관광 배가 38선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 장관은 이를 통해 금강산 관광이 성공하게 됐다며 "이것이 우리의 '자기 중심성, 자기 결정권'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로는 정부 주도의 대북 정책이 남북 관계의 변곡점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이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입장을 밝힌 직후 나왔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튀르키예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 단계에서는 쉽게 얘기할 수 없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이야기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정세에 따라 훈련 조정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해석인데, 정 장관 역시 한미 연합훈련 조정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한 바 있다. 정 장관은 지난 8일에도 북미 회담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한미 연합훈련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날 발언도 훈련 조정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정 장관의 발언을 북한과의 대화 모색을 위한 전략으로 풀이한다. 북미 회담 가능성이 내년 3월 한미 연합훈련을 기점으로 제기되는 만큼, 자체적인 훈련 조정을 통해 대화 환경을 선제적으로 조성한다는 분석이다. 앞서 북한은 북미 대화의 필요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거론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확보하려는 판단도 엿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북미 대화를 지지하며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이를 계기로 남북 대화의 여건도 다지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내년 4월 예정된 미중정상회담이 고려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 지난달 무산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언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정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희망한 내년 4월이 정부에게 주어진 시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정 장관은 미국 측과 관련된 의견을 교환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이날 '자기 결정권' 발언 이후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를 만나 한반도 정세 및 대북·통일 정책에 대한 한미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정 장관은 김 대사대리에게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간 대화를 열어 갈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밝혔다. 이어 미중 정상회담이 내년 4월 예정된 만큼 앞으로가 중요한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또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한국 정부가 페이스메이커로서의 노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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