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서초=정소영 기자] 한반도 비핵화 구상과 이재명 정부의 ‘END 이니셔티브’(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인공지능(AI) 대전환이 불러올 경제안보 과제가 ‘2025 서울외교포럼’에서 종합적으로 논의됐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가운데 북핵 고도화와 국제질서 재편 속 한국의 실용외교와 대북 접근은 주요 논제로 떠올랐다.
18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2025 서울외교포럼’은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 한국의 실용외교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외교 △AI 대전환을 위한 경제안보 외교 등 총 3개의 세션으로 구성됐다.
조 장관은 윤종권 외교부 국제사이버협력대사가 대독한 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이 안보 측면에서 가장 우선할 과제는 전쟁을 예방하고, 한반도가 무력 충돌의 촉발점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핵 없는 한반도는 포기해선 안 될 절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북한과 대화 복원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메이커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피스메이커를 지원한다고 한 것은 대화 자체의 복원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한다"고도 설명했다.
포럼 개회사에 나선 최형찬 국립외교원장은 "대한민국 신정부는 더 안전하고 번영하며 글로벌 책임을 다하는 국가로 나아가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안고 있다"며 "오늘 제시된 다양한 의견이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정교하고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1세션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 한국의 실용외교’에선 동아시아 질서 논의에서 북한 변수를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외교 당국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미즈시마 코이치 주한일본대사는 "북한은 일본과 한반도 전체에 여전히 직접적 위협"이라며 "일본과 미국뿐 아니라 여러 국가들이 협력해 비핵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이 빙 주한중국대사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진 않았다. 그는 "남북 관계는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안보가 그 중심에 있다"며 "중국의 대북·한국 정책에 건설적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불안정이 동남아에도 파급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웡 카이 쥔 주한싱가포르대사는 "동남아시아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한반도의 불안정은 동남아시아에도 큰 영향을 준다"며 "아세안 국가들은 (한국과) 북한의 대화 재개를 꾸준히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한국의 역할에 대해 "강력한 확장억제 전략을 취하는 것"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 북한과 어떤 관계 정립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날 제2세션에선 이재명 정부의 대북 구상인 ‘END 이니셔티브’가 집중 조명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대한민국이 END 이니셔티브를 통해 한반도의 냉전 구조를 해체하고 글로벌 평화 구축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정책과 한반도 안정 추구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지만, 지금은 북핵을 둘러싼 국제 환경이 훨씬 복잡해진 만큼 강대국·주변국과 함께 문제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류 아밍 상해사회과학원 교수는 "END 이니셔티브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이라고 호평하며 "성공을 위해선 대화와 인내가 필요하고 이 정책은 미국의 대북정책과도 정렬돼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END 이니셔티브를 이행하기 위해 강대국 간에 긴장 완화가 필요하고 한국이 다자협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야모토 사토루 세이가쿠인대학교 교수는 END 이니셔티브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북한은 비핵화를 명백히 거부했고 핵보유국이면서 핵무기개발을 하겠다는 의지를 지속해서 밝혀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 대화를 위해선 "유엔 혹은 다자 플랫폼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제협력 관점에서 본 END 이니셔티브도 소개됐다. 홍지영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북한은 지리적 요충지, 한국은 기술 강국으로서 철도·도로·항만 인프라와 북극항로(NSR) 연결에서 상호 보완적 강점을 가진다"며 "경제협력을 신뢰 구축 메커니즘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3세션에선 ‘AI 대전환을 위한 경제안보 외교’에 대한 발표가 진행됐다. 김유철 LG AI연구원 전략부문장은 한국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수출통제와 같은 폐쇄적인 정책이 아닌 자국 AI 모델과 서비스 활용을 독려하는 정책을 통해 산업 특화 데이터 기반의 기술 고도화를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표준 협력을 통한 AI 발전 선도 전략과 함께 한국의 AI 시스템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현정 한국과학기술원 부교수는 "AI 기술은 국방력과 비슷하다"며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규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은 시스템적인 규제를 만들고 이러한 규제 하에 기술을 정립하려고 했다"면서 "결국 우수한 AI 기반이 있었지만 규제가 많아 유럽에선 아쉽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부연했다. 심 부교수는 "국민의 AI 이해·활용 교육,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스타트업 경진대회 등을 통해 "국내 AI 생태계 안에서 인재가 성장하고 머무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AI 기술총괄은 "AI에 필요한 것은 데이터와 학습 자원"이라고 언급했다. 또 "AI가 잘못된 의도를 가진 행위자 손에 들어가면 악용될 수 있는 만큼 국가 단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왕휘 아주대 교수는 "소버린 AI(국가주도 AI 역량)의 의미를 어디까지로 볼지, 어느 수준까지 독자 개발·운용을 해야 주권적이라고 할지 정의가 필요하다"며 "독자 생태계를 구축할 때 기술개발 경쟁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가 (전 세계 AI 강국 순위가) 3등이라고 해도 강대국 사이에서 행사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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