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가 발표된 지 나흘 만에 첫 반응을 내놨다. 다만 당국자 담화가 아닌 조선중앙통신 논평으로 격을 낮춘 데다 표현 수위도 전반적으로 조절했다는 평가다.
북한은 한미 합의 사항에 대해 일일이 따져 들었지만, 기존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신 핵추진잠수함(핵잠) 도입 추진과 관련해 '자체 핵무장 포석'이라며 반발했다. 중국과의 공조를 고려한 듯한 '항행의 자유' 언급도 있었다.
북한은 18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지난 14일 발표된 한미 팩트시트와 한미 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 내용 대부분을 언급했다. 논평은 '변함없이 적대적이려는 미한동맹의 대결선언'으로 약 3900자 분량의 장문이다.
논평에 따르면 북한은 팩트시트에 명시된 '완전한 비핵화'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헌법을 끝까지 부정하려는 대결 의지의 집중적 표현"이라며 "그들의 유일무이한 선택이 우리 국가와의 대결임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표현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완전한 비핵화'로 바꾼 것 자체가 우리 국가의 실체와 실존을 부정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23년 9월 핵 무력 보유를 헌법에 명문화한 점과,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를 명시한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이같은 입장은 최근 최선희 외무상의 담화에서도 확인된다. 앞서 최 외무상은 지난 14일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자 "우리 국가 헌법에 대한 직접적 침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미 전략자산의 전개, 한미일 3각 공조 등을 거론했지만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비핵화나 한미연합훈련, 한미일 협력 등에 대한 자신들의 기본 입장을 반복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짚고 넘어가는 식으로 수위를 조절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당국자 명의가 아닌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활용한 점도 수위 조절의 근거로 꼽힌다. 통상 조선중앙통신 논평은 북한의 메시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한다. 이재명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실명도 거론되지 않았고 원색적 비난도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북한은 핵잠 도입 추진과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해선 논평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북한은 논평을 통해 "'준 핵보유국'으로 키 돋움 할 수 있도록 발판을 깔아준 사실은 미국의 위험천만한 대결 기도를 직관해 주고 있다"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또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를 승인해 준 것은 조선반도지역을 초월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군사 안전 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전 지구적 범위에서 핵 통제 불능의 상황을 초래하는 엄중한 사태 발전으로 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이 2003년 핵잠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다며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 야망이 결코 우리 국가의 핵 보유에 대처한 '반사적 조치'이거나 '지역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북핵 억지력 차원에서 핵잠을 도입한다는 우리 정부의 논리를 배격하기 위한 주장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북한은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는 '자체 핵무장'의 길로 나가기 위한 포석으로서 이것은 불피코 지역에서의 '핵 도미노 현상'을 초래하고 보다 치열한 군비경쟁을 유발하게 돼 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은 한미 팩트시트에 적시된 '항행의 자유 재확인'을 언급하고 "주권 국가들의 영토 완정과 핵심 이익을 부정하고 국제적인 분쟁 지역 문제들에 대한 간섭을 노골화하려는 흉심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사실상 대중 견제 문구에 북한이 나서서 반발한 셈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북중 관계 복원 현실을 반영하면서 한중 관계 복원을 비판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 합의 사안은 중국의 민감도가 높아 중국의 입장 및 태도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통해 일정한 '공동 보조'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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