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정소영 기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4일 김영남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사망 소식에 애도의 뜻을 밝혔다. 정부 차원의 공식 조의문이 발표된 가운데 북한 측 반응과 이를 계기로 한 남북 접촉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통일부는 이날 대변인실을 통해 정 장관 명의 조의문을 공개했다. 정 장관은 "김 전 위원장의 부고를 접하고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김 전 위원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2005년 6월과 2018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평양에서 김 전 위원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북측 관계자 여러분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북한은 이날 관영매체를 통해 김 전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97세인 김 전 위원장은 암성중독에 의한 다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날 주요 간부들과 함께 김 전 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을 찾아 조문했다.
김 전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역대 북한의 세 지도자를 모두 경험한 고위급 인사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면담하기도 했다.

정 장관의 조의문 발표는 김 전 위원장의 사망 소식 직후 이뤄졌다. 다만 과거 정부가 조전을 전달했던 사례와 다른 양상이다. 정부는 2005년 10월 연형묵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사망에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 명의로 북측 장관급회담 수석대표 앞에 조의를 표하는 전통문을 보냈다.
2006년 8월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사망 때에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 2015년 12월 김양건 노동당 비서 사망 때에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로 조의를 전하는 전통문을 발송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엔 정부 차원의 조의는 없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등의 조문단 방북이 허용됐다.
이와 달리 이번 조의문은 언론 발표 형식에 그쳤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 간 통신이 끊겨 조의문을 직접 전달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제3국을 통한 조전 전달이나 조문 사절 파견 등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부연했다.

다만 남북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선, 이번 조의문 발표에 적잖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조의문 발표는 적대국 간에도 회복되는 계기가 되긴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문 외교'"라며 "누가 조문을 가느냐, 어느 수준의 메시지를 내느냐 등을 조절해서 국가 간 관계 개선 의지가 있으면 (조문 외교가)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남북 관계 진전 효과가 과거처럼 즉각적이진 않겠지만 이재명 정부가 일관성 있게 북한과 소통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조치"라며 "이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 행보는 그 의지를 실천하는 상징적 제스처"라고 평가했다.
다만 조의문 발표 결정에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전 위원장은 1970~1980년대 대남 적대정책을 주도하고,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을 통해 '남조선이 미국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도록 하게 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녹아나는 게 남조선'이라는 발언을 했던 인물"이라며 "장관이 조의문을 발표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삶의 궤적을 보고 조의문 발표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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