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국회=이태훈 기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이 1일을 끝으로 마무리되면서 여야가 다시 '정쟁 모드'에 돌입할 채비에 나서고 있다. 임박한 대통령실 대상 국정감사부터 한미 관세협상 후속 절차, 2026년도 예산안 심사까지 정쟁 뇌관이 산적하면서 정치권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까지 정청래 대표가 선언한 무정쟁 주간"이라며 "정 대표는 사전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오늘까지 무정쟁 기간이니 발언에 신중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사실상 다음 주부터 정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정 대표는 경주 APEC 정상회의 일정이 임박하자 국민의힘에 '정쟁 중단'을 제안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주요국 정상들이 한국에 와 다자외교에 나서는 만큼, 국내 정치권의 잡음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실제로 민주당 인사들은 APEC 주간 동안 논평에서 국민의힘을 직접 겨냥한 공세를 지양하고, 국정감사장에서는 충돌과 고성을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같은 민주당 기조는 당장 APEC 후 180도 변할 공산이 크다. 정부·여당을 향한 국민의힘의 공세에 적극적인 반격에 나설 게 확실시된다. 여야 정쟁 재개의 신호탄은 오는 6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쏘아 올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감 증인 출석이 사실상 무산된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관련 의혹을 두고 여야가 강하게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의 후속 절차도 정기국회 주요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관세협상 결과에 따른 대미 투자는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사안으로, 헌법 제60조 및 통상조약법상 국회의 비준이나 효력 발휘를 위한 특별법 통과가 필요하다.
국익 관련 사안인 만큼 국민의힘도 기본적으로 후속 절차에 협조한다는 방침이나, '정부의 면밀한 설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국민의힘이 정부의 '설명 부족'을 지적하면서 협조하지 않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더팩트>와 만나 관세협상 후속 절차 협조와 관련해 "정부의 설명을 요구하는 게 먼저"라며 "비준은 그 이후"라고 했다.
매년 연말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여야의 '예산 전쟁'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진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5일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종합정책질의에 나선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를 각각 진행한다. 17일부터는 내년도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소위 의결을 거친 뒤에는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하게 된다.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12월 2일이지만, 여야 정쟁 탓에 시한을 지키지 못한 해가 대부분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예산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는 게 관례인데, 이번에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예산 심사라는 상징성이 있어 국민의힘 반대가 거셀 것"이라며 "예년보다 예산안 통과가 훨씬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