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수·정소영 기자]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만남 제안 직후, 외교 실무 핵심 관계자의 출국 소식을 이틀 연속으로 전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순방 일정까지 연기할 수 있다며 재차 김 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7일 최선희 외무상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외무성의 초청에 따라 전날 평양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러시아 외무부는 최 외무상이 26~28일 방러한다고 밝혔다. 최 외무상은 이후 벨라루스를 들러 이달 말쯤 귀국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 외무상의 일정은 '김정은과 만나고 싶다'고 밝힌 트럼프 대통령의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계기 방한 일정(29~30일)과 동떨어져 있다. 북한의 대미 외교 실무 총책을 맡고 있는 최 외무상이 자리를 비운 만큼, 북미 회담이 열리긴 어렵다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재차 거절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은 전날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최 외무상이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방문하게 된다"고 짧게 전했지만, 이날 노동신문에선 출국 시점 등을 추가해 관련 사실을 다시금 보도했다.
APEC 계기 북미 회담을 촉구하는 정부도 이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APEC 계기가 북미 정상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도, 최 외무상의 출국으로 북미 회담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해석에 대해선 "그런 평가도 있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27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일본 도쿄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그(김 위원장)를 만나면 정말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시아 순방 일정을 늘릴 수도 있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기 전 김 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에 대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답한 바 있다. 시기상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 이후 북한의 최 외무상 출국이 이뤄졌고, 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만남 의사를 재차 피력한 셈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이 모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에 선을 그었다고 보기엔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며 "실무협의라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했다고 해서 하루이틀 만에 바로 진행되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무자(최 외무상)가 방러한 것은 미국과의 실무협상 가능성이 낮다는 걸 의미하지만 북미 간 접촉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며 "정상회담 개념 대신 인사나 차담 등 비공식 교류가 이뤄질 여지는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모든 것에 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정상이 조우할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이지는 않다"면서도 "어느 경우에도 대비할 생각은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북미 양 정상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촉구했고, 북한이 최근 1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판문점 일대에 미화 작업을 하고 있다며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