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88234'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88)하다가 2~3일 앓고 죽는(死·4) 것이 소망이라는 의미다. 잘 죽는 것, 이른바 웰 다잉(Well Dying)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다. 요양원의 노인들은 추석과 같은 민족 대명절에도 외곽으로 밀려나 가족 곁에 있기 어렵고, 요양병원에선 학대와 방임, 과잉 진료 문제가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국민 5명 중 1명은 노인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지금, 정치권이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할지 <더팩트>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하린 기자] 요양원의 돌봄 공백과 요양병원의 학대·방임 문제는 우리 사회의 노후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여전히 부족함을 보여준다. 이제는 정치권이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책임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 CCTV부터 간병인까지 '사각지대'...국회 앞 놓인 과제
보호자들 사이에서는 의료법 개정으로 요양병원 병실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빗발친다. 실제 21대 국회에서 당시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재호 의원이 요양병원의 CCTV 의무화와 보호자 대상 투약내역 제공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각각 의료법, 노인복지법 개정으로 수술실과 요양시설은 내부 CCTV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정작 요양병원은 그 대상에서 제외돼 현재 법적 공백 상태인 것이다.
문제는 피해자 측에게 전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보호자가 현실적으로 실시간 관리·감독이 어렵다 보니 실생활에서 간병인으로 인해 학대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직접 입증할 증거를 구하기 어렵다. 간병인 학대 목격 경험이 있는 C(57·남) 씨는 "요양병원 CCTV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특히 치매가 있거나 말하지 못하는 등 정신이 온전치 못한 환자의 경우, 피해 과정 자체가 확인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간병인 제도 개선이나 요양병원 기능 조정 역시 국회 차원의 논의와 입법이 필요하다. 요양보호사와 달리 간병인은 국가공인 자격증이 아닌 민간 자격으로 운영돼 정기 교육이나 점검 제도가 사실상 전무하다.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해 요양병원 내부에서 인력 부족이 발생하고, 이는 곧 관리·감독 소홀로 이어지기 일쑤다. 간병인에 대한 정기 교육을 의무화하고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현 의료체계상 역할이 모호한 요양병원의 기능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 분산된 시설들을 정비해 통합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급성기 병원과 1·2·3차 병원 사이 애매한 위치인 요양병원의 의료 체계 내 역할을 명확히 정리하고, 장기요양 이용 시스템 내 장기 요양등급자의 요양병원 이용에 대한 기준을 정리해야 한다"며 지역 돌봄 체계 구축과 함께 이뤄져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 노인이 행복한 시대, 정치권이 만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나서서 요양원과 요양병원 등 노인 복지 서비스 질을 높여 노인이 실질적으로 안락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 교수는 "폐쇄적인 요양시설이 아닌 가족과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늘릴 수 있는 개방적 요양시설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존엄한 삶에 대한 관심에 높아지면서 우리 사회가 돌봄의 '니즈(Needs)'를 잘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서울 서초구가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신원동 인근에 건립 추진 중인 선진형 어르신 복지시설인 '서초형 복합복지타운'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400명 규모의 노인 요양시설과 보건지소, 문화 체육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해당 사업 추진 당시 서초구청장이던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9일 <더팩트>에 "해외에서 접한 선진형 요양시설은 단순한 돌봄공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활기찬 커뮤니티로 운영되고 있어 이같은 공간 철학을 지역 사회에 접목하고자 했다"며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요양시설이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행복을 교류하는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노인 돌봄 체계에서 게이트키퍼(Gate Keeper·사례관리자) 제도 도입도 하나의 대안으로 꼽힌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노인 복지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양 교수는 "현재는 노인이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도 어디서 어떤 서비스를 신청하고, 어떤 기관과 연계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안내해주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면서 "가족들이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