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234<중>] 신고해도 불송치 53만건…사각지대 놓인 노인학대
  • 이하린 기자
  • 입력: 2025.10.04 06:00 / 수정: 2025.10.04 06:00
"속이 썩어 문드러져"…폐쇄적 내부, 알 길 없어
노인 학대 불송치 건수 역대 최고…현실 앞 좌절 多
노인 학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과 사후 대응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제3회 노인학대 예방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노인학대 피해자가 사연을 전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노인 학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과 사후 대응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제3회 노인학대 예방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노인학대 피해자가 사연을 전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9988234'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88)하다가 2~3일 앓고 죽는(死·4) 것이 소망이라는 의미다. 잘 죽는 것, 이른바 웰 다잉(Well Dying)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다. 요양원의 노인들은 추석과 같은 민족 대명절에도 외곽으로 밀려나 가족 곁에 있기 어렵고, 요양병원에선 학대와 방임, 과잉 진료 문제가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국민 5명 중 1명은 노인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지금, 정치권이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할지 <더팩트>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하린 기자] "내 손으로 부모님을 순장하는 것 같아 껄끄럽다."

어쩌다 우리 사회에서 요양병원이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됐을까. A(67·남) 씨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양병원을 다녀온 이후 한 달 사이에 성격이 고분고분해졌다"며 장모님의 변한 모습을 씁쓸히 회고했다. 요양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카랑카랑한 성격이었던 장모님의 성격이 한 달 사이에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학대와 방임은 보호자들이 지켜보는 면회 시간에서도 노골적으로 벌어진다.

지방에서 치매를 겪는 80대 모친을 요양병원에 모셨던 B(56·여) 씨는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에 의한 정서적 학대를 두 눈으로 목도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B 씨는 자기 모친이 거동하기가 불편해 혼자 밥을 먹지 못했는데, "이것도 못 먹냐" "왜 다 흘리고 먹냐"며 핀잔을 줬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당시 모친의 병원복이 국과 반찬 국물로 다 젖어있었다고 한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노인 학대 사건의 경찰 불송치 건수는 2021년 38만 9178건, 2022년 35만 7099건, 2023년 39만 1206건에 이어 2024년에는 53만 3544건을 기록했다. 올해는 전년 대비 14만 건 이상 급증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건이 송치가 되더라도 불기소 처분을 받는 수가 매해 평균 약 608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 726건 △2021년 459건 △2022년 706건 △2024년 628건이다. 예컨대 2023년의 경우 전체 사건 수인 3467건에서 불기소 처분 수(706건)과 보호 사건 수(1500건)로 분류된 사건을 제외하면 기소는 약 36%만 이뤄진 셈이다.

노인 학대 사건이 실제 가해자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학대 의심 사례 발생 시,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심사해 경찰에 고발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송치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고 현행법상 고발인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다. 특히 보호자가 없는 노인의 경우 학대로 인한 피해를 외부에 알리거나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 피해가 더욱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30대 이 모 씨는 "대학생 때 어머니를 요양기관에서 병간호하면서 간병인이 보호자가 없는 환자 위주로 정신적 학대, 방임을 한 것을 종종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간병인끼리 모여 환자들을 놀리기도 하고, 구박하고,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조차 '밥 안 준다, 밥 먹지 마' 등 하대했던 기억이 있다"며 목격담을 털어놨다.


underwat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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