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여야의 대치 정국이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정쟁 법안 처리를 두고 서로의 잘못을 탓하며 공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악화될대로 악화된 여야 간 이해조정이 사실상 난망인 데다 내년 지방선거를 고려할 때 대치 국면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여야가 극명하게 이견을 보이는 쟁점 법안은 크게 네 가지다. △검찰청 폐지와 기획재정부 개편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방통위 폐지를 핵심으로 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상임위원회 명칭을 변경하는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 △특별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끝나더라도 위증죄를 고발할 수 있도록 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국민의힘은 쟁점 법안 처리에 대응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으로 맞서고 있다. 25일 오후 본회의에 정부조직법이 상정되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고, 곧바로 박수민 의원이 첫 토론 주자로 나섰다. 현실적으로 민주당의 입법 강행을 막을 수는 없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후에는 재적의원 5분의 3(180석) 이상 동의로 토론을 강제로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필리버스터는 법안 처리를 지연하는 수준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무제한 토론을 감행한 것과 관련해 "강한 반대의 뜻을 국민 여러분 앞에 보여드려야 한다는 총의가 모였다"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사회적 혼란과 이에 따른 국민의 피해를 무시한 채 합의되지 않은 법안을 졸속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검찰청 폐지는 위헌적이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교체하고 이름만 바꿔 방통위를 장악하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여당은 국민의힘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부조직법에 필리버스터를 걸어 저지하겠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미래로 가겠다는 것을 발목 잡고 저지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라면서 "대단히 개탄스럽고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발목잡기 정치의 최후가 어떤 심판으로 이어지는지 역사는 기록하고, 국민은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상대를 탓하는 거대 양당 모두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민주당은 자기중심적 논리와 의석수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국민의힘이 토론과 합의를 무시하고 법안 처리에 급급하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이언근 전 부경대 초빙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민주당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마음대로 못 했던 걸 한풀이하듯 독주하다시피 하고 있다"라며 "조금씩 국민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누적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경우 국회 파행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의 법안을 막을 도리가 없는데도 의도적으로 지연한다는 따가운 여론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번 필리버스터는 정부조직법의 위헌성을 잘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중도층의 피로도를 올릴 수 있고 국회가 사실상 멈춰 서면서 문제가 있지만 야당에 선택지는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애초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검토했지만 60여 건의 비쟁점 법안은 처리하는 데 협조하기로 했다. 하지만 쟁점 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으로 일부 민생 법안 처리가 뒤로 밀리게 됐다. 이번 본회의에서 '경주 APEC 정상회의 성공개최 결의안'과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특별법' 등 19건만 처리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