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화 통화 사실을 13일 공개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와 해외 정상 간 통화 사실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양국 통화는 오는 15일(현지시간)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졌다.
미·러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종전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북한으로서는 북·러 밀착의 확장성을 고심해야 할 시점인 셈이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러시아에 '파병 지분'을,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패싱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전날 전화 통화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매체가 최고지도자와 해외 정상 간 통화 사실을 공개한 건 최초다.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정상 간 통화를 밝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특사 또는 서한 교환을 통해 협력을 과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의 이번 조치가 무척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북한은 보도를 통해 지난해 6월 양국이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조약)을 언급, △전 분야 협조 관계 심화 발전 △향후 협력 강화 의지 등에 대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재확인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은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파병을 높이 평가했다며 '혈맹' 관계를 과시했다.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쿠르스크 영토를 해방하는 과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제공한 지원과 조선인민군 군인들이 발휘한 용감성과 영웅주의, 희생정신을 다시금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조약의 정신에 언제나 충실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다만 북한은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다. 단순히 "두 나라 국가 수반들께서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는 정도에 그쳤다. 반면 러시아 크렘린궁은 12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통화 사실까지만 공개한 건 김 위원장의 복잡한 심경을 방증한다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은 '우크라 담판'이 펼쳐질 미·러 회담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과 통화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북·러 밀착의 핵심 고리가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회담이다.
북한은 최근까지 우크라이나 전선에 1만5000여 명의 병력을 보낸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이 중 600여 명이 사망하는 등 4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손실이 컸다. 북한은 그 대가로 정치·경제·외교·국방·사회·문화 등 사실상 전 분야 협력을 러시아와 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러 회담이 '우크라 종전'으로 귀결된다면,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할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처지다. 회담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이렇다 할 언급을 꺼내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이례적인 방식으로라도 북·러 밀착을 과시했다는 해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러 회담이 우크라이나전 종전으로 이어진다면 북러 협력이 지금보다 강화될 가능성은 없다"며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가 좋다는 것을 일부러라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한이 러시아를 붙잡아 두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러시아도 북한의 그런 우려를 모를 리 없으니 통화를 한 것"이라며 "러시아는 북한에 '미국과 협의를 하려고 하는데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다, 회담 이후에도 패싱하지 않겠다' 정도의 메시지를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이날 미·러 회담이 알래스카주 최대 도시 앵커리지에 열린다고 밝혔다. 참모들이 배제된 양국 정상 간 일대일 면담도 이뤄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의 의중이 푸틴 대통령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될 것이란 해석도 제기된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9일 김여정 부부장 담화를 통해 미국과 조건부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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