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또다시 '사면' 공방…올해도 정쟁 불씨로
  • 김세정 기자
  • 입력: 2025.08.07 00:00 / 수정: 2025.08.07 00:00
박근혜·MB·김태우 등 특사 때마다 논란
사면권 개정안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 못넘어
매년 광복절을 앞두고 특별사면이라는 주제는 정국의 중심 이슈로 떠오른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은 국민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행사되지만, 정치적 거래와 자의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올해도 사면 대상과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며 사면권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2024년 광복절 특별사면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임영무 기자
매년 광복절을 앞두고 '특별사면'이라는 주제는 정국의 중심 이슈로 떠오른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은 국민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행사되지만, 정치적 거래와 자의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올해도 사면 대상과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며 사면권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2024년 광복절 특별사면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매년 광복절을 앞두고 '특별사면'이라는 주제는 정국의 중심 이슈로 떠오른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은 국민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행사되지만, 정치적 거래와 자의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올해도 사면 대상과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며 사면권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권력자의 판단에 좌우되는 불투명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 개선 요구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다시 커지고 있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이 중 대통령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특정인에게 형 집행을 면제하거나 복권하는 권한이 바로 특별사면이다. 헌법 79조에 따라 대통령은 특별사면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 형의 선고나 집행의 효력을 일부 또는 전부 면제할 수 있다. 보통 광복절과 신년을 맞아 대규모로 단행되는데 생계형 범죄 등 민생 사범들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거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할 때 사용됐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사면권 행사는 취지와 거리가 먼 방식으로 행사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대상자 선정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법무부의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치더라도 최종 결정은 전적으로 대통령 의지에 달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특정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 사면 대상에 포함되면서 '법 위의 권력'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기업 총수들의 사면은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 뒤에 숨은 특혜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려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21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신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했다. 건강 상태와 국민통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당시에도 적폐 청산을 기조로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촛불 민심에 대한 배신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소로 들어서는 모습. /뉴시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21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신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했다. 건강 상태와 국민통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당시에도 '적폐 청산'을 기조로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촛불 민심에 대한 배신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소로 들어서는 모습. /뉴시스

사면권의 정치적 활용을 둘러싼 비판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사례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21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신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했다. 건강 상태와 국민통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당시에도 '적폐 청산'을 기조로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촛불 민심에 대한 배신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기에는 사면을 둘러싼 회의론이 더욱 커졌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8월 취임 이후 첫 특별사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경제인을 포함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도 단행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가 뇌물·횡령 등 중범죄였고, 반성의 뜻을 밝히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다.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사면은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했던 김 전 구청장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돼 2023년 5월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인 같은 해 8월, 윤 대통령은 그를 광복절 특사로 사면했다. 피선거권이 회복된 김 전 구청장은 곧바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출마했고, 이 사건은 사면권이 특정인의 정치적 복귀를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인식을 낳았다.

이처럼 사면권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행사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선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국회에서는 사면권 남용을 막기 위한 법적 개선 논의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등 권력형·기업형 범죄에 대해 사면을 제한하고,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결정하기 전 사법부의 의견을 청취하거나, 확정 판결 후 일정 기간 내에는 사면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주요한 방향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제도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사면은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했던 김 전 구청장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돼 2023년 5월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인 같은 해 8월, 윤 대통령은 그를 광복절 특사로 사면했다. 김 전 구청장이 지난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입장을 밝히는 모습. /박헌우 기자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사면은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했던 김 전 구청장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돼 2023년 5월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인 같은 해 8월, 윤 대통령은 그를 광복절 특사로 사면했다. 김 전 구청장이 지난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입장을 밝히는 모습. /박헌우 기자

이러한 논의는 최근 국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2대 국회에선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대표적이다. 박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발의한 사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대통령의 친족 및 정무직 공무원을 사면대상에서 제외하고, 사면 대상자 명단을 국회에서 사전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민희 의원도 탄핵으로 파면된 이, 헌정질서 파괴범죄자, 성범죄자, 대통령의 배우자 등에 대한 특별사면을 할 땐 국회의 동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 12·3 비상계엄 이후엔 여권 의원들 중심으로 내란 범죄를 저지른 이의 사면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다만 이 같은 규제는 헌법상 평등 원칙에 위배될 수 있고, 사면 명단을 국회에 사전 보고토록 하는 조항은 대통령의 독립적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궁극적으로는 헌법 개정을 통한 구조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보다 위에 있는 사면권을 극히 제한적으로 운영하면 운영의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그게 아니다"라며 "또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니까 (접근하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결국 사면권이 국민 통합의 도구인지, 아니면 정권의 정치적 수단인가를 가르는 기준은 그 투명성과 공정성에 달려 있다. 대통령의 일방적 결단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의 기준에서 수용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박 평론가는 "이재명 정부로선 (이번 광복절 사면이) 시험대"라며 "(사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당 부분 이재명 정부의 도덕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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