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송호영 기자] 한미 관세 협상이 일단락됐지만 '한미동맹 현대화' 사안이 새로운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중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중국 견제 역할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대중 관계에 있어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가 '레드라인(제한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4일 미국은 한국 이외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일본 등에 동맹 현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방비 지출 확대를 통한 북한 재래식 전력에 대한 억지력 확대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대중 견제 동참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1954년 발효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3조를 근거로 한국에 미·중 갈등에 대한 대응을 요청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조항은 "한미 둘 중 하나가 태평양 지역에서 공격받으면, 다른 한 나라가 자국 안보 위험으로 인정하고 각자의 헌법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3일(현지시간) 공개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대중 관계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 이웃 국가들에 다소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게 또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조 장관은 "우리는 중국의 부상과 도전을 꽤 경계하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중국에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며 중국이 양자뿐만 아니라 역내 현안에서도 국제법을 준수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취임 후 첫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동맹 현대화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지금 엄중한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국방력을 강화한다든지 여러 가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동맹 현대화가 미국의 중국 견제 과정으로 읽힐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우리가 중국에 대해선 그런 필요성, 우리 정부가 취할 조치들에 대해 잘 설명해 왔다"며 "큰 어려움으로 대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한미동맹 현대화 과정에서 양안 관계 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예측했다.
정재환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이 양안 문제에 대해 한국의 역할을 촉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 교수는 "한국으로서는 동북아에서 일정 정도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양안 관계나 대만이라는 단어를 포함하지 않는 선의 역할을 결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이 양안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중국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도 양안 관계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위원은 "동조한다고 하면 상황이 아주 복잡해질 것 같다"며 "한중 관계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때보다 훨씬 더 안 좋아질 수 있는 상황이 오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한중 관계는 2016년 불거진 사드 배치와 이에 따른 한한령(限韓令·중국의 한류 제한령)으로 악화한 바 있다.
양안 관계의 민감성에는 동의하지만, 한국에 끼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양안 관계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한국이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쟁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육군의 전쟁이 아니고 해군과 공군의 전쟁이라서 우리 군의 필요성이 작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맞대고 있고 육군 중심인 한국군의 구조상 양안 관계 개입이 힘들다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에게 더 필요로 하는 것은 군사력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조선업과 탄약 등 방산이 시급하다. 그 문제로 이 대통령이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상호 관세율이 15%로 정해진 데에도 조선업 분야의 기여가 있었다. 당시 양측은 선박, 건조, MRO,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는 1500억 달러 수준의 한미 조선업 협력 펀드를 조성, 한국 기업의 수요에 기반해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는 계획에 합의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서 관심 있는 게 안보 분야에 한국이 돈을 내는 것"이라며 "방위비 분담을 포함해서 우리가 얼마나 그 부분을 부담하느냐는 문제가 트럼프에게는 거의 유일한 관심"이라고 말했다. 양안 관계보다는 방위비 분담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큰 틀에서 미국과 같이 협상해서 동맹을 유지하되 중국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방법으로 가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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