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오죽했으면 냉풍기를 샀겠어요."
폭염이 한창인 지난달 31일. 이날 최고 기온은 36도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 7월 한 달간 열대야가 22일에 달하며 117년 만에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푹푹 찌는 날씨에 서울 여의도 국회 곳곳에선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곡소리가 새어 나왔다. 보좌관 A씨는 이날 <더팩트>에 "오후가 되면 햇볕이 엄청 쨍쨍해 등이 타 죽을 것 같다"며 "한 달 전쯤 사비로 냉풍기를 샀다"고 털어놨다. 그는 "오죽했으면 냉풍기를 샀겠냐"고 했다.
해당 의원실을 방문해 보니, 통유리 구조로 인해 한낮에는 직사광선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살인적인 날씨에 보좌진이 일하는 업무 공간도 자연스럽게 같이 달궈졌다. 선풍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더위였다. 결국 그는 냉각 기능까지 포함된 15만 원 상당의 이동식 냉풍기를 사비로 마련했다.
의원회관은 신축 당시 통유리로 설계돼 열전도율이 높고, 이에 따라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내부 온도가 쉽게 상승한다. 대부분의 의원실에서는 보좌관과 비서관이 책상 옆에 개인용 선풍기와 같은 냉방 기기를 비치해 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부 의원실은 의원회관의 중앙 냉방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의도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기 위한 '꼼수'를 쓰기도 했다. 방마다 설치된 온도 측정기에 손난로를 붙이거나, 정수기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센서를 자극해 중앙 냉방이 가동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국회 곳곳에서 더움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날 오후 의원회관 1층 로비에는 세미나 준비 또는 참석 등을 이유로 국회를 찾은 방문객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출입을 위해 길게 선 줄에는 목에 착용하는 선풍기인 '넥팬'부터 휴대용 선풍기인 '손풍기'까지 있었다. 더위를 견디지 못하겠듯이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국회 내부 온도 상승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발표한 '2035년 탄소 중립 국회 로드맵'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주된 원인이다. 우 의장은 지난 6월 17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국회 탄소중립 선언식'에서 2035년까지 국회 차원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공공기관보다 10년 앞선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국회는 냉방 기준을 '적정 실내온도 26도'로 유지하고 있다. 냉방 시간도 일과 시간인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제한된다.
국회사무처는 지난달 20일 '국회청사 에너지 절약 관련 안내문'을 통해 소통관 기자실도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로 시범적으로 단축 운영한다고 밝혔다.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국회 청사 냉방시간 증가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업무 환경에서의 불편함이 적지 않지만 기후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는 대다수가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 재선 의원은 "의원실이 많이 더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것이라면 참아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 직원 B씨는 "많이 덥긴 하지만,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차원이니 이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출근 시간이 이른 청소노동자나 야근 중인 직원들은 더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국회에서 올해로 12년째 근무 중인 청소노동자 C씨는 "오전 5시에 출근해 의원실 10여 곳을 청소하는데, 냉방이 안 되니 너무 덥다"며 기자에게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연신 닦아 보였다. 그는 "오전에 청소를 마치고 나면 옷이 땀에 흠뻑 젖어 다시 입을 수 없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비서관 D씨도 "저번 인사청문회 준비 때문에 야근할 때 에어컨이 꺼져서 힘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