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호영 기자]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중단에 이어 북한에 대한 개별 관광 허용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목이 모아진다. 다만 전문가들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21일 북한 개별 관광 허용 문제에 대해 "정부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관계 개선을 목표로 대북 정책을 수립,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소통 재개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 같은 방안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8년 박왕자 씨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 등 단체 관광이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대북 제재에 포함되지 않은 개별 관광을 허용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간 특수자료로 취급해 비공개했던 북한 만화, 영화 등 자료에 대한 제한도 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20일 "북한 자료의 대국민 공개 확대를 추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체제 선전용이 아닌 자료에 한해 정보 공개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독일의 사례처럼 문화 교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다.
20년 만에 돌아온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대도 나온다. 정 후보자가 20년 전 장관 시절 화상 상봉을 성사시킨 바 있어서다.
정 후보자는 14일 진행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과의 소통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초청을 고려하겠다며 "APEC이 한반도 평화의 테이블이 된다면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이고 그 의미가 빛나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후보자는 지난 8일 납북피해자가족모임이 공식적으로 전단 살포를 중단한 데에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자는 최성룡 납북피해자가족모임 대표에게 납북자 문제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며 전단 살포를 중단해달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남북 간 소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난관도 도사리고 있다. 남북 간 연락망이 2023년 4월 단절된 이후 같은 해 12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개별 관광 허용도 여러 문제가 엮여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이산가족의 금강산 및 개성 방문, 우리 국민의 제3국을 경유한 북한 방문, 남북 연계를 통한 외국인 북한 관광 등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미호응과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성사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1기 행정부의 공개적인 우려 표명도 영향을 끼쳤다.
이산가족 상봉도 현재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산가족 행사는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을 통해 본격화했지만,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중단됐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금강산 관광지구 내 이산가족면회소를 철거 중이다.
학계에선 북한과의 소통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철회하지 않는 한 민간 교류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내년쯤 되면 북미 간 협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그러한 큰 변화가 있을 때 움직여야지 꽉 막힌 상태에서 서두르면 대북 레버리지(영향력)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제적으로 조치를 함으로써 남북 간에 논의해야 할 조건들을 먼저 써버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모든 국가 간 관계에는 상호성이 있는데 일방적인 조치만으로는 문제가 풀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일영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도 "우리 정부가 대북 관계나 외교 전략의 차원에서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남북 관계가 워낙 막혀 있는 상황"이라며 "새 정부가 이것을 풀어보려는 의지를 보이는 과정에서 무리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계적으로, 기존의 통일부 조직이나 남북 관계 관련 법제를 정비하며 진행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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