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은 2008년 공휴일에서 제외된 이후 '쉬지 않는 국경일'로 남으며 점차 존재감이 흐려졌다. 최근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이 제헌절을 공휴일로 재지정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헌법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거에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가운데 이번에는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날로, 3·1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1949년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경일로 지정됐으며, 같은 해 제정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에 따라 1950년부터 공휴일로 적용됐다.
그러나 2004년부터 단계적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따른 근로시간 감축과 생산성 저하 우려가 제기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정부는 공휴일 폐지 의견이 높았던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여름휴가와 방학 기간에 있어 휴무자가 많은 날인 데다 광복절과 취지가 중첩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2005년 6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을 통해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고, 제헌절은 국경일이지만 쉬지 않는 날이 됐다.
국가 초석을 다진 헌정사의 출발점이라는 의미와 상징성에 비해 제헌절의 낮은 위상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이어졌다. 또 한글날이 2013년 다시 공휴일로 재지정된 것과 비교되며 제헌절의 공휴일 재지정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일각에서는 국경일인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반면, 상대적으로 상징성이 낮은 어린이날이나 현충일 등은 여전히 공휴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한 공감도도 높다. 실제 지난해 7월 엘림넷 나우앤서베이가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8.2%가 제헌절의 공휴일 재지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특히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등으로 헌정질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헌법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재인식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제헌절의 상징성을 되새기자는 움직임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강대식 의원은 지난 9일 공휴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 공휴일에 관한 법률 제2조 1호는 공휴일을 '국경일 중 3·1절, 광복절, 개천절 및 한글날'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국경일'로 변경해 모든 국경일을 공휴일로 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대체공휴일을 운영할 수 있다'에서 '운영해야 한다'로 바꿔 대체공휴일 지정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강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제헌절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체계를 세운 날로서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며 "공휴일 지정은 국민이 헌법의 의미를 되새기고 민주주의 가치를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17대 국회부터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을 핵심으로 한 법안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강 의원의 법안까지 포함해 총 17건이 발의됐다. 결의안과 청원도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대에 이어 22대에서도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현재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 법안이 이번 22대 국회에서 성공적으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단연 경제적 문제다.
공휴일 확대는 국민 휴식권 보장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기업과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는 게 조사처의 설명이다. 공휴일은 근로기준법상 유급휴일로 근로자는 일을 하지 않아도 임금을 지급받고, 근무 시에는 추가 수당을 받아야 해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또 조업일수 감소로 생산과 수출이 줄어들 우려가 있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공휴일이 적용되지 않아 휴일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사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법치국가의 모법을 제정한 날은 헌법수호의 필요성에 비춰볼 때 그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고, 국경일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는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에 대한 여론을 충분히 수렴·공론화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토대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도록 적극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헌법 제정을 되새기는 목적,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면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을 못 할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이념적인 갈등의 요소를 상정하고 추진하는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