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출범 5주 차를 맞은 국정기획위원회가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정부 조직개편에 막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과 맞닿은 국정운영 밑그림은 완성했지만, 정책 구체화와 세부 이행계획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 출범과 동시에 활동을 시작한 데 따른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홍근 기획분과장은 전날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국정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후반전이 아닌 3분의 2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나머지 3분의 1은 총력을 다해 정교함과 정합성을 다지는 시기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범 5주 차를 맞아 내달 중순까지 예정된 활동 기한의 반환점을 돈 국정위는 이재명 정부 5년 국정과제를 약 120여 개 수준으로 압축해 정리 중이다. 이를 이행하기 위한 실천과제 목록은 약 650개에 달한다.
이에 국정위는 이번 주 국정과제 이행 계획을 조정하고 실천과제 목록을 축소하는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재원 마련 방안도 함께 논의할 방침이다. 박 분과장은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실천과제 목록은 약 550개 수준으로 정리될 것"이라며 "필요한 재원과 입법, 조직 신설 등 더 촘촘하고 꼼꼼하게 효율적인 집행을 위한 게 어떤 것인지 들여다볼 생각"이라고 했다.

국정위는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검찰 수사·기소권과 기획재정부 예산 기능 분리 등 정부 조직개편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검찰 개편안에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 4법'이 얼마나 반영될지가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달 11일 수사를 전담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설치하고, 법무부 산하에는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공소청을 설치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했다.
중수청은 부패·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경제 등 6대 중대범죄에 내란·외환·마약범죄를 포함한 8대 중대범죄의 수사를 담당하게 된다. 공소청은 수사권을 배제하고 기소와 공소 유지 등 재판 과정에 한정된 기능만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수사권 분산에 따른 기관 간 충돌과 국민 혼선을 줄이기 위해 국무총리 직속으로 국가수사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도 담겼다.
박 분과장은 "국정위의 검찰개혁과 국회, 특히 우리 당의 검찰개혁 논의, 그리고 대통령실의 안이 따로 갈 수 없다"며 "서로 교감해 하나의 안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위는 지난주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한 의원들과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다만 행안부가 이미 경찰을 산하에 두고 있는 만큼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설치할 경우 수사권이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이한주 위원장은 "국가 전체 수사역량을 보존하면서도 수사권이 한 곳에 집중돼 나타나는 피해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진통을 겪었던 검찰 업무보고가 재개될지도 관심사다. 이 위원장은 "검찰에서 전체적으로 지도부 교체가 있는 상황이라 쉽게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언제라도 검찰에서 다시 업무보고를 충실히 해온다면 다시 보고를 받고 참고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정위는 지난 1일 검찰 업무보고를 무기한 연기 결정한 이후에도 "업무보고 일정과 관계없이 검찰의 조직개편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며 검찰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기재부의 예산 기능 분리도 정부 조직개편의 핵심으로 꼽힌다. 예산과 세제, 경제 정책까지 모두 총괄하는 기재부를 나눠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예산처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고 경제정책을 기획하는 재정경제부를 신설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린다. 이에 따른 기능 조정으로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해 금융감독원을 총괄하게 하는 방안과 금융위원회가 담당하던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에서 가져가는 방안이 거론된다.

국정위는 출범 3주차인 지난 3일 대통령실에 조직개편안을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협의는 아직 진행 중인 단계다. 이 위원장은 "지난 3일 대통령께 1차 초안을 보고드렸고 의견을 교환한 후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위는 이 대통령이 공언한 기후에너지부 신설도 조직개편안에 포함해 방향성을 고민 중이다. 구체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과 환경부의 기후 부문을 통합해 새 조직을 신설할지, 환경부가 산업부의 에너지 부문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개편할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이외에도 인구부 신설도 거론되고 있다.
국정위는 조직개편의 원칙과 방향을 '권력 분산'과 '국가 위기 대응'이라고 규정했다. 그중에서 검찰과 기재부 분리는 전자에,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후자에 해당한다는 게 국정위의 설명이다.

국정위는 16개의 신속추진과제도 선정해 관계부처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 중 이 대통령이 연내 이전 검토를 지시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확정됐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 저소득층 긴급복지지원 예산 확보도 조치 완료했다. 이 밖에도 내년도 R&D 예산 문제, 결혼 준비 서비스 가격 투명화, 연구과제 중심운영제도(PBS) 개편 방안도 신속추진과제로 분류해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정위는 개헌 문제도 국정과제에 포함해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개헌 추진을 주도할 국회 개헌특위 구성과 이 대통령이 '개헌 발판'으로 언급한 국민투표법 개정 등 여러 과제가 남아 있어 속도 조절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 위원장은 "개헌은 국민과 정부 모두의 관심 사안이자 어려운 문제"라며 "어디까지 다뤄야 할지조차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어 구체적 내용과 절차를 쉽게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국정위는 오는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고 개헌 추진을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공약과 맞닿은 국정운영 밑그림은 마련했지만, 정책 구체화와 이를 뒷받침할 세부 이행계획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어 정부 출범과 동시에 활동을 시작한 데 따른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더팩트>에 "인수위원회 없이 정부가 출범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통상 인수위 활동과 비교해 속도가 다소 더딘 듯 보인다"라며 "이제는 성과를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개헌의 경우 현 단계에서 공론화하면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될 수 있어 대통령 차원에서 다소 소극적일 가능성도 있다"며 "이를 고려할 때 개헌에는 속도조절 의지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정위가 최종 결과물을 내놓기에 앞서 조율이 어느 정도 이뤄진 부분부터라도 국민에게 선공개해 여론 수렴 절차를 밟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