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국민의힘이 대선 패배 한 달 만에 본격적인 당 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다. 오는 8월 전당대회 전까지 혁신위원회를 통해 쇄신 공백을 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위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면 실효성 있는 쇄신은 또다시 좌초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공식 취임한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혁신위원장에 안철수 의원을 내정했다.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설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제약 조건이 있지만 그전까지 혁신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혁신위는 이르면 이번 주 10명 이내로 혁신위원 인선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안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송 위원장과 회동한 이후 기자들과 만나 "결국 일명 중수청, 중도·수도권·청년이 다시 우리를 돌아보고 관심 가지는 게 중요하니까 그에 초점을 맞춰서 인사를 할 것"이라며 "원내 3분의 1, 원외 당협위원장 3분의 1, 외부 3분의 1 정도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주 수요일 회의를 통해 논의되는 혁신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안 의원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안을 예고했다. 그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당의 상황을 '사망 선고 직전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빗대며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수도권 4선 국회의원으로 당내 비주류이자 계파색이 없는 인물로 분류된다. 그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혀왔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첫 표결 당시 '투표 불참' 당론으로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던 국민의힘 의원들과 다르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투표에 참여했다. 대선 과정에선 경선 탈락 이후 김문수 전 후보를 적극 지원했고, 패배가 예상된 출구 조사 이후에도 끝까지 개표상황실 자리를 지키며 존재감을 굳혔다.
탄핵 국면에서 보여준 안 의원의 소신 있는 행보가 그를 혁신위원장에 오르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수민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정 배경에 대해 "안 의원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중립적이고 묵묵하고 외롭게 정치의 길을 걸어온 안 의원을 결코 놓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송 위원장도 "이공계 출신으로서 의사, 대학 교수, IT 기업 CEO를 두루 경험하신 분으로 과감한 당 개혁의 최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다만 혁신위의 권한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혁신위가 얼마만큼의 권한을 갖는지 또는 지도부가 혁신위의 혁신안을 얼마만큼 수용하는지에 따라 개혁의 완성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송 위원장은 ‘혁신위에 전권을 맡길 생각이 있느냐'는 질의에 "그동안 당 특별위원회 형식으로 기구를 만들었을 때 당의 의사결정 체제 내에서 운영해 온 사례가 있다"라며 "그 부분을 고려해 운영해 나가겠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혁신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혁신위 권한 보장과 혁신안 수용 정도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됐다. 2023년 '인요한 혁신위'는 당 지도부·중진·친윤(친윤석열)계 핵심의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등을 포함해 6개 혁신안을 제시했지만 김기현 당시 당대표와 당 주류가 거부하면서 조기 해산했다. 반면 2005년 전권을 부여받은 '홍준표 혁신위'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혁신안을 대부분 받아들이면서 몇 없는 성공 사례로 꼽힌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당 의사결정 체제가 있는 상황에서 혁신위의 안을 100% 받아줄 수는 없겠지만 70% 이상 넘게 수용하겠다는 메시지를 내 '혁신에 힘을 실어준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라며 "그래야 혁신위의 논의가 의미가 있는 거지 참고하겠다 정도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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