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당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막당사도 불사하던 과거 보수 정당의 모습이 사라졌다. 철야 농성과 장외로 나가는 등 과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대여 투쟁에 나섰지만 이에 임하는 의원들의 마음가짐이 예전같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선 패배 이후 당내 깊게 자리 잡은 '무력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더 나아가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선 아무리 전투력을 높여도 힘을 받을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회' 공식 출범 첫날인 1일 국민의힘은 대여 투쟁을 본격화했다.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궂은 날씨에도 의원들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모여 현장 의원총회를 열고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권의 김 후보자 인준 강행을 막을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장외 투쟁으로 맞선 것이다.
이들은 '우기면 장땡? 분노유발 김민석' '불법! 무능! 부적격 김민석'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불법무능 총리후보 김민석을 철회하라" "해명 없이 변명하는 김민석은 사퇴하라" 등 규탄 구호를 제창했다. 송 원내대표는 "청문회 따위 증거자료 없이 우기면 넘어갈 수 있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새털처럼 가볍고 오만한 김민석 후보자 인준을 강행하는 그 순간 이재명 정부의 몰락이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날 현장 의원총회에는 국민의힘 의석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50여명의 의원만 참석했다. 각 상임위원회와 출장 일정으로 불가피하게 참여하지 못한 의원들도 있지만, 당내 '무의미하다'는 분위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초선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김 후보자 지명은 적절하지 못하고 아쉽다. 다만 민주당이 왜 그렇게(강행) 할 수 있겠나"라며 "우리 당이 야외에서 대여투쟁을 했지만 국민들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고 짚었다.

김 후보자 지명 철회와 국회 법사위원장 반환을 요구하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5일째 숙식을 이어가고 있는 나경원 의원의 농성 방식을 두고도 설전이 오가고 있다. 여권에서는 이를 두고 "캠핑 또는 바캉스 같다"고 비판했고, 야권에서조차 "보여주기식 정치"라는 지적이 나왔다. 거대 여당을 견제하고 의회 내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야당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안일한 행보만 보인다는 것이다.
김성태 전 국민의힘 의원은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제대로 된 야당이 되기 위해서 농성을 하더라도 국민들이 볼 때 ‘7월 뙤약볕에 밖에서 저렇게 고생하며 단식을 하면서 몸이 상할 건데, 이재명 정부와 절대 입법 권력 민주당 이 친구들 해도 해도 너무하네’ 이런 여론이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야당 자신들이 자정 노력하고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는 당당함을 만들어 놔야 국민들이 야당의 목소리를 듣는다. 지금은 그 대목이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스스로 자성과 반성 없이는 어떤 투쟁을 하더라도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없다는 게 뼈아픈 대목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의원들에게 예전만큼의 결기가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를 지지하는 국민 여론이 없기 때문이다"라며 "또 국민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고 있지 않기도 하다.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로텐더홀 농성은 국민 눈높이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도 "국민이 국민의힘을 현 정권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인식해야 하는데 여전히 내란 동조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지할 만한 명분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라며 "그 상황에서 아무리 강한 투쟁력과 실력을 보인다고 한들 국민이 기대하고 신뢰를 보낼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