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울어진 운동장. 한쪽으로 쏠려있는 경우를 비유한다. 대한민국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다. 반대로 지방은 소멸 일보 직전이다. 지금 당장 무게 추를 맞춰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지역균형발전 공약으로 '5극 3특'(5대 초광역권과 3대 특화권역)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전국을 두루두루 살펴 지역을 고루고루 발전시켜야 한다. <더팩트>는 지난 대선 기간 전국의 젊은 귀촌·귀농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이 싹틔운 희망을 통해 지방소멸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고자 총 9편의 [고루고루]를 기획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화천=이철영·신진환·김정수 기자] 농사짓는 아내와 노래하는 남편. 개미와 베짱이 부부로 선입견을 품을 수 있다. 강원도 화천군에 귀농해 농사짓는 '금실' 좋은 젊은 부부 송주희(36)·김윤철(37) 씨가 꼭 그렇다.
송 씨는 귀농 10년 차다. 서울에서 취직 준비를 하던 송 씨는 어머니가 크게 다쳤다는 말에 강원도 화천군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이후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다 자연스레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 송 씨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40년 가까이 농사일을 하고 계셨던 데다, 인디밴드 '모던다락방' 보컬로 활동 중인 남편 김 씨의 자상함이 큰 힘이 됐다. 다만 송 씨가 '너래안'을 궤도에 올리기까지 8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부모님께 농사일을 배웠지만 제 나름대로는 고민이 깊었어요. 주변 친구들은 취직을 하고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는데, 저는 농사일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후계농으로 대출을 받아 땅을 사서 독립할 순 없었어요. 그건 너무 무모하니까요. 그러다 기름을 짜서 사업을 시작해 보기로 했어요.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딱 200만 원을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200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시작부터 대박을 터트릴 리는 만무했다. 공장도 없는 가내 수공 형태였기에 참기름과 들기름 판매량은 100병 정도에 그쳤다. 취업을 준비하다 귀촌했던 만큼, 수중에 돈 한 푼도 없어 투자는 언감생심이었다. 송 씨는 아까운 시간이었다고 했지만 도움이 될 만한 정부 정책들을 하나씩 확인할 수 있던 시기라고도 했다. 귀농 청년들의 현실도 그제야 마주하게 됐다고 했다.
"요즘 정부 정책을 보면 신규 농업인들을 많이 발굴하려고 해요. 하지만 기반이 없으면 힘들어요. 하물며 비빌 언덕이 있던 저도 그랬으니까요. 농업도 창업이에요. 아이디어가 좋다고 해서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죠.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대출이 있지만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빚이에요. 위험 요소가 너무 커요. 그럼에도 왜 육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최근에 논란이 있었던 거 아시죠?

앞서 정부는 '청년농업인 3만명 육성'을 계획, 매년 신규 청년농업인들을 선정했다. 2022년 2000명, 2023년 4000명, 2024년 5000명 등으로 매년 그 규모도 늘어났다. 선발된 이들은 저금리로 영농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선발 인원이 대폭 늘어났지만 예산 확보가 적시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심사에 합격하고도 대출을 받지 못하거나,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 청년 농업인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생했다. 올해 예산마저 8000억 원에서 6000억 원 규모로 삭감됐다.
"귀농 청년들을 위한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가 스마트팜이에요. 스마트팜은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대출을 받더라도 그걸 갚을 정도의 수확이 되느냐는 미지수죠. 스마트팜이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컴퓨터나 인공지능(AI)이 수확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거든요. 요즘은 임대형 스마트팜도 많이 하는데 2~3년 계약식이에요.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한 고용 불안이 있는 거죠. 스마트팜으로 농촌이 활기를 찾고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다? 저는 현실과 조금 동떨어져 있다고 봐요."

송 씨는 중앙정부에서 기획한 귀농 정책을 지역에 내리꽂는 방식도 효율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역마다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지역 입장에서는 중앙정부의 틀에 맞춰 정책을 시행하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귀농하더라도 지역에서는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시선 역시 적지 않다고 했다. 의지와 실력이 있더라도 등쌀 아닌 등쌀에 못 이겨 떠나는 이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번에 강원도에서 하는 정부 보조 지원 사업 공모전에 참여했어요. 예산이 도비 50%, 군비 20%, 자부담 30%였어요. 근데 군에서는 이걸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선정되면 군비를 써야 하는데, 담당자가 이렇게 큰 사업을 해본 적이 없다면서 다른 농가들의 반발이 심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곳에 내려와서 사업을 하시다가 떠난 분이 있어요. 그분이 하시던 말씀이 '북한보다 더하다'라는 거였어요. 지원 사업 같은 것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거든요. 매출이 10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10억 원이든, 모두 균등하게 말이죠."

송 씨와의 대화가 이어지던 중 음악 이야기가 나오자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남편 김 씨가 슬며시 나타났다. 컴퓨터로 무언가 열심히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춘 그는 "챗 GPT와의 대화가 지겨웠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씨는 춘천을 중심으로 인디밴드 '모덕다락방'을 하고 있다. 그는 베짱이가 아니다. 아내를 옆에서 응원하고 농사일을 돕고 서류 등 많은 업무를 담당한다. 그는 대화 도중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업무를 봤고, 돌아와선 아내와 함께 꿈꾸는 일을 진지하면서도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부부가 꾸는 꿈은 학생들이 사라져 버린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주변에 귀농·귀촌한 젊은이들과 지자체로부터 일정 부문 지원을 받고, 폐교를 음악과 미술 그리고 아이들의 쉼터가 갖춰진 곳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운동장엔 울창한 나무를 심고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문화를 즐기는 시골 마을이다. 부부가 꾸는 꿈은 현실로 이뤄질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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