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울어진 운동장. 한쪽으로 쏠려있는 경우를 비유한다. 대한민국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다. 반대로 지방은 소멸 일보 직전이다. 지금 당장 무게 추를 맞춰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지역균형발전 공약으로 '5극 3특'(5대 초광역권과 3대 특화권역)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전국을 두루두루 살펴 지역을 고루고루 발전시켜야 한다. <더팩트>는 지난 대선 기간 전국의 젊은 귀촌·귀농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이 싹틔운 희망을 통해 지방소멸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고자 총 9편의 [고루고루]를 기획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의성=이철영·신진환·김정수 기자] 스물일곱의 나이에 남편과 경북 의성군으로 내려왔다. 도시 생활의 염증과 시부모님 일손을 거들며 생각했던 농산물 직거래에 대한 문제의식이 도화선이 됐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 8년을 '버틴' 끝에 안착에 성공했다. 그러는 사이 4명의 아기 천사도 찾아왔다. 이제는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때다. 농산물 직거래 업체 '빅토리팜'을 운영하는 손다은(35) 씨의 이야기다.
"남편은 대학교 CC로 만났어요. 저는 21살이었고, 남편은 25살이었죠. 어느 날 남편이 '나는 꿈이 농부야'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너무 황당했어요. 21세기에 어떻게 꿈이 농부일 수 있나 싶었죠. 저는 계속 부산에서 살던 소위 '도시 사람'이라 농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남편이 여름만 되면 저와 친구들을 의성에 데리고 갔어요.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보면 남편의 큰 그림이었나 봐요."

손 씨는 지금의 시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곳에서 그저 복숭아를 맛보고, 자두를 따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손 씨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대목이 있었다. 도시에선 맛보기 힘들거니와 값비싼 과일이 이곳에선 너무 값싸게 유통되고 있었던 것. 손 씨는 당시의 문제의식이 귀농의 계기가 됐다고 했다. 쳇바퀴처럼 맴돌던 도시 생활의 공허함도 한몫했다.
"저는 방송국 작가로, 남편은 자동차 생산·관리직으로 일했어요. 결혼하고 평택에 자리를 잡았지만 자꾸 맴도는 기분이었어요.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헛도는 느낌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던 것 같아요. 단순히 '농사를 짓고 직거래를 해보자'라는 거였거든요. 도시 생활을 접고 내려간다고 하니 양가 부모님들은 펄쩍 뛰셨죠."
귀농을 결심한 2017년 당시 손 씨는 27살, 남편은 31살이었다. 손 씨의 뱃속에는 아이도 있었다. 대차게 결심한 귀농이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생산과 유통, 홍보와 판매까지 모든 게 처음이었다.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루이틀이었다. 매출이 곧바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5년 거치에 20년 상환 조건으로 받은 정책 대출도 점차 두려움이 됐다. 손 씨는 귀농 3년 차에 접어들 당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압력밥솥'이었다고 토로했다.

"어려움이 없었다면 100% '뻥'이죠. 귀농 시작부터 현실이 시작됐고, 누구를 탓할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었어요. 대출에 뱃속의 아이까지, 그러다 보니 정체성에 혼란을 많이 겪었어요. 2019년쯤에는 우울증 비슷하게 오더라고요. 감정을 표출하지 못했던 점이 컸던 것 같아요. 도시와는 다르게 젊은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가 없다 보니 점점 고립된 느낌이었고요. 남편도 남편대로 압력이 차오르고 있었죠."
손 씨는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었지만 남편의 구슬땀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 법인 사업자 등록과 통신판매업 절차를 마친 손 씨는 농산물을 공판장에 넘기는 방식이 아닌, 소비자와 직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냈다. 재배와 수확 과정을 SNS에 올려 홍보에 나서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모든 성공 과정이 그렇듯 축적의 시간은 손 씨 부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을 버틴 끝에 손 씨 부부는 비로소 안착할 수 있게 됐다.
"현실적인 조언이요? 농부는 직업 그 이상의 의미라고 봐요. 그만큼 마인드 세팅이 달라야 하죠. 농업 자체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따라갈 수 없어요. 제 남편은 귀농하지 말라고 할 정도거든요. 일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결국 돈에 흔들릴 수밖에 없고 결과는 뻔한 거죠. 막상 내려오게 되면 누가 가르쳐주는 게 없어요. 정부 정책들도 많이 갖춰져 있지만 그걸 찾아서 따내는 건 온전히 본인 몫이죠. 돌이켜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네요."

손 씨는 귀농의 현실을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또 다른 어려움과 마주한 상황이다. 뱃속의 아이까지 자녀 네 명의 미래가 손 씨 부부에게 달려있기 때문. 손 씨는 '아이들이 귀농을 결정한 건 아니기'에 교육과 교우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인구소멸 지역인 이곳에선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면 좋다는 말이 있지만 현실은 냉정해요. 첫째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 30명 정도 있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절반씩 줄었어요. 저희 첫째와 둘째가 연년생인데, 둘째가 입학할 땐 입학생이 없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농촌은 놀이터와 같아서 너무 좋긴 하지만 교우 문제는 또 다르잖아요. 어떻게 보면 교육보다 그런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죠. 그런 환경은 또 부모가 만들어줘야 하고요."

이렇다 보니 손 씨 주변에선 귀농을 하더라도 결국 자녀 문제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특히 엄마와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게 되는데 초등학교 입학 전에 1차 러시가, 고학년 때 2차 러시가 있다고 했다. 손 씨는 도장만 안 찍었다 뿐이지 그렇게 떨어져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이른바 '귀농 기러기' 가족 형태다. 손 씨는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엄마들을 붙잡아야 하죠. 제가 볼 때는 거점 학교를 만들어서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이 실현돼야 한다고 봐요. 여기를 무슨 눈이 뒤집어질 정도의 엘리트 교육이 이뤄지는 대치동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교육 있잖아요. 그런 교육을 원하는 저 같은 부모들이 많거든요. 지역별로 군소 도시에 조금이라도 관련 학교를 마련해준다면 학원도 보낼 필요 없이 여기서도 잘될 거예요. 저는 개선이 없다면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cuba20@tf.co.kr
shincombi@tf.co.kr
js8814@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