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고루-⑤] 귀촌은 냉혹한 현실…"기반 없이는 NO"
  • 신진환, 이철영, 김정수 기자
  • 입력: 2025.06.26 00:00 / 수정: 2025.06.26 07:08
[인터뷰] 30대 귀촌 양봉 박정현·전통식품 성나겸
"귀농·귀촌? 은퇴한 뒤가 나아"
"인구 유입? 문화·복지는 확실히 필요"
도시로 나갔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산다는 것은 심적으로 편한 것만은 아니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각각 경북 산청과 경남 의령으로 귀촌한 박정현(왼쪽, 양봉업) 씨와 성나겸(전통식품 판매) 씨는 귀촌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많은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산청·의령=이철영 기자
도시로 나갔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산다는 것은 심적으로 편한 것만은 아니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각각 경북 산청과 경남 의령으로 귀촌한 박정현(왼쪽, 양봉업) 씨와 성나겸(전통식품 판매) 씨는 귀촌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많은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산청·의령=이철영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 한쪽으로 쏠려있는 경우를 비유한다. 대한민국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다. 반대로 지방은 소멸 일보 직전이다. 지금 당장 무게 추를 맞춰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지역균형발전 공약으로 '5극 3특'(5대 초광역권과 3대 특화권역)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전국을 두루두루 살펴 지역을 고루고루 발전시켜야 한다. <더팩트>는 지난 대선 기간 전국의 젊은 귀촌·귀농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이 싹틔운 희망을 통해 지방소멸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고자 총 9편의 [고루고루]를 기획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산청·의령=이철영·신진환·김정수 기자]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보면 좋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향에 내려와 무언가를 한다는 게 편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아무런 기반 없이 귀촌을 고민하는 청년분들은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달 21일 경북 산청군 지리산자락에서 부모님과 함께 양봉업을 하는 박정현(31) 씨는 <더팩트>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환상을 가지고 귀촌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제언이었다. 산청에서 나고 자라며 학업까지 마친 박 씨도 사실 서울에서 2년 동안 부동산업에 종사하다가 4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복잡한 도시살이가 자신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당시 친구들이 왜 내려오냐고 하더라. 지금은 심정적으로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라면서 웃음을 보였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양봉업에 종사하는 박정현 씨가 지난달 21일 경북 산청군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모습. 그는 아무런 기반 없이 귀촌을 고민하는 청년분들은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산청=이철영 기자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양봉업에 종사하는 박정현 씨가 지난달 21일 경북 산청군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모습. 그는 "아무런 기반 없이 귀촌을 고민하는 청년분들은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산청=이철영 기자

실제로 귀촌하는 청년은 꽤 많다. 단순히 도시에서 농촌으로 터를 옮기는 '귀촌'은 농업을 생업으로 삼기 위해 이주한 '귀농'과 다른 개념이다.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통계청이 24일 발표한 '2024년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촌인은 42만2789명으로, 전년보다 2만2696명(5.7%) 늘었다. 귀촌인의 평균연령은 43.1세로 전년보다 0.1세 낮아졌다. 세대별로 보면 △20대 10만1948명 △30대 9만6188명 △40대 6만5439명 △50대 7만1102명 △60대 5만8836명 △70대 이상 2만9276명이다. 수도권 (서울·인천·경기)에서 이동한 귀촌인의 구성비가 전체의 42.7%를 차지했다.

귀농·귀촌한 청년들은 대체로 자본 부족으로 대출을 받아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사업 특성상 실패의 위험이 크고,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리기까지 상당 기간이 걸린다. 사진은 박 씨가 만들어내는 제품들. /이철영 기자
귀농·귀촌한 청년들은 대체로 자본 부족으로 대출을 받아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사업 특성상 실패의 위험이 크고,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리기까지 상당 기간이 걸린다. 사진은 박 씨가 만들어내는 제품들. /이철영 기자

인구가 적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대도시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따라서 청년들이 안정적인 수입원을 찾기 어렵다. 청년 대부분은 농업에 뛰어들거나 창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자본이 만만치 않다. 자본이 필요한 청년은 결국 농업과 창업 관련 대출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농업 창업의 경우 연 2% 고정금리로 최대 3억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대신 농업을 그만두거나 스마트팜 사업에 실패하면 고스란히 빚을 떠안는다. 위험부담이 크다. 박 씨가 기반 없는 귀촌을 말린 이유다.

인구 유입이 시급한 지자체들도 귀농·귀촌 체험, 초기 정착지원금, 창업 및 주택자금 지원금 등 까다로웠던 심사 요건을 완화하는 식으로 솔깃한 정책을 내놓으며 청년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박 씨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래봤자 대출금이다. 농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분들이 돈이 많지 않은 이상 귀농 자금을 대출받아 쓰는 구조다. 농업을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귀농을 희망하는 분들은 귀농하기 전에 많이 알아보고 공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 씨는 귀농을 희망하는 분들은 귀농하기 전에 많이 알아보고 공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철영 기자
박 씨는 "귀농을 희망하는 분들은 귀농하기 전에 많이 알아보고 공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철영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귀촌한 3000명이 사용한 정착자금은 1억5053만원이었다. 자금 마련 방법은 △본인 및 배우자의 저축액 45% △자산처분 27.7% △상속 또는 가족의 도움 11.7% △금융권 대출 9.9% △퇴직금 5.1% △정부정책 지원금 0%이었다. 귀촌 정착자금으로 76.9%가 주택을 마련하는 데 썼다. 이어 △생활비(13.3%) △창업비용(5.4%) △농지와 텃밭 등 토지구입(3.1%) △영농활동비(0.5%) 차례다.

박 씨는 "아무것도 없이 덜컥 시골에 내려와 귀농·귀촌을 해보고 싶다는 청년이 있다면 차라리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농업이나 농산물 사업은 정말 힘들다. 양봉업의 경우 벌의 양에 따라 꿀 생산량이 달라지는데, 기후 변화와 전자파 영향 등으로 벌이 많이 죽었다. 올봄 종벌 구매에 35만원(벌통 한통 기준)이 들었다. 그러면 벌써 밑천이 1억 원 정도 들었다. 여기에 인건비, 부자재비, 생산유지비 등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 많다. 귀농·귀촌을 계획하는 분들은 더 잘 살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경남 의령군에서 만난 성나겸(35) 드레스푸드 대표는 부모님과 함께 가내수공업으로 된장·고추장·각종 청 등을 가내수공업으로 만드는 청년 일꾼이다. /의령=이철영 기자
지난달 22일 경남 의령군에서 만난 성나겸(35) 드레스푸드 대표는 부모님과 함께 가내수공업으로 된장·고추장·각종 청 등을 가내수공업으로 만드는 청년 일꾼이다. /의령=이철영 기자

지난달 22일 경남 의령군에서 만난 성나겸(35) 드레스푸드 대표 역시 귀농·귀촌의 신중론을 제기했다.

"도시에서 살다가 대출받아 귀농한다? 저라면 안 한다. 아무리 저금리라더라도 숨만 쉬어도 이자를 내야 한다. 창업이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다. 스마트팜을 만들어 농업에 뛰어들어도 누가 작물을 팔아주는 것도 아니다. 판로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만큼 빚을 지고 사업하면서 대출금을 갚아 나가야 하는데, 내 인생을 책임질 만큼 매출이 잘 나올지도 미지수다.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성 대표를 만난 날, 가마솥에 불을 지펴 조청을 끓이고 있었다. 그는 현재 체험을 위해 찾은 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철영 기자
성 대표를 만난 날, 가마솥에 불을 지펴 조청을 끓이고 있었다. 그는 현재 체험을 위해 찾은 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철영 기자

서울의 한 대학을 나온 성 대표는 주로 부산에서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전통식품을 생산하고 식품업체를 운영하는 부모님과 지내고 있다. 2023년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해 부모님이 전통제조 기법으로 만드는 고추장·된장·각종 청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아버지 사업은 연매출 3억 원 정도, 저는 아직 1억 원 정도다. 제 사업은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이며 지금도 쉽지 않다. 수입은 직장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서 생활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등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많지 않은 물량이지만 수출도 하고 있다. 성 대표는 현재 제품을 만드는 작업장 뒤쪽에 체험을 위해 찾은 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공사 중이다. 도시와 떨어진 이곳에서 체험 후 별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다만 그는 세대·지역 간 문화(?) 차이를 짚기도 했다. 그는 "서울 등 대도시는 여러 명이 불편을 느끼는 민원을 넣으면 시정되곤 한다. 여기는 저 같은 청년들만 문제점을 지적할 뿐 어르신은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 보니 불편한 점들이 개선되는 게 조금 부족하다. 최근 수요자가 적어 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없어졌다. 부산까지 가려면 이제는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대중교통 배차 간격도 크다. 큰 결심을 하고 지방으로 내려온 이들이 후회하고 떠나는 게 왜일까"라며 안타까워했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양봉업에 종사하는 성나겸 씨가 지난달 22일 경북 의령군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모습. /이철영 기자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양봉업에 종사하는 성나겸 씨가 지난달 22일 경북 의령군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모습. /이철영 기자

청년이 지방에 터를 잡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생활 인프라라고 성 대표는 강조했다. 그래야만 젊은 세대가 지방이 자리를 잡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출산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귀농·귀촌은 고민해 볼만한 일이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 자체가 경험이다. 대신 사전에 하고자 하는 일이나 지방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인구가 별로 없는 지자체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려면 문화와 복지, 이 두 가지는 확실히 필요하다. 상식적으로 바보가 아닌 이상 낙후된 곳으로 누가 가겠나. 처음부터 거창할 수는 없다. 전시 행정 좀 말고, 조그맣더라도 실질적인 생활 기반 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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