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실시된 제21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정권 심판론이 우세했다. 국민의힘은 2022년 집권당 지위를 3년 만에 더불어민주당에 내주게 됐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보수 단일화 실패와 당내 계파 갈등의 표면화, 중도층 외연 확장 실패 등으로 '이재명 대망론'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범보수 단일화 실패가 김 후보 낙선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애초 국민의힘은 경선 과정에서부터 '반(反)이재명 빅텐트'를 내세웠지만, 주요 인사들이 포함되지 않으면서 점차 힘이 빠졌다. 경쟁자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경선 패배 이후 미국 하와이로 출국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당 선대위원장직을 고사하고 독자적인 유세 지원에 나섰다. 보수가 하나로 모이기보다는 오히려 뿔뿔이 흩어진 셈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 갈등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았다. 김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김덕수(김문수+한덕수)'를 약속하며 당내 지지세를 끌어올렸지만, 결국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보수층 내부 분열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점쳐지면서 역전의 가능성도 있다고 봤지만, 이 역시 무산되면서 보수 표가 갈렸다는 평가가 많다.
김 후보와 이준석 후보는 선거 직전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김 후보는 지난 2일 "혁신당 이준석 후보와 단일화를 성사시키지 못해 송구하다"며 "이준석 후보를 찍으면 이재명 후보만 도와주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준석 후보도 같은 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세밀한 조사와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김문수 후보는 이미 분명히 졌다. 단일화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방식으로도 이길 수 없다"며 "이준석에게 던지는 한표는 범보수세력이 젊음을 바탕으로 새로 시작해보라는 투자의 시드머니 한 표"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당내 계파 갈등이 거론된다. 유세 과정에서 당은 화합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친윤(친윤석열)계와 친한(친한동훈)계 등 계파 간 크고 작은 파열음들이 새어 나왔다. 당 일각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김 후보의 유세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마저 나올 정도였다.
대표적인 친한계인 당내 최다선(6선) 조경태 의원이 뒤늦게 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이후 친윤계 윤상현 의원도 같은 직으로 선대위에 합류하자, 조 의원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며 철회를 촉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선거운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은 무효화’를 주장하자, 이번에는 윤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러한 갈등이 중도층 외연 확장 실패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김 후보가 12·3 계엄과 대통령 탄핵의 책임론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계엄 당시 김 후보는 국무위원이었고, 계엄에 사과하기보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을 비호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핵심 보수 지지층 결집엔 성공했더라도 중도층과 무당층까지 확장하지 못한 것이다.
김 후보는 전국을 돌며 유세에 앞서 매번 시민들 앞에 큰절을 올렸다. 계엄과 탄핵 등으로 인한 차가워진 민심을 되돌리려는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선거 막판 당에서 당정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당헌 개정도 진행했고, 윤 전 대통령도 탈당했지만 이미 민심은 돌아선 뒤였다.

국민의힘 측은 선거 기간 내내 지지율 '골든크로스'를 주장하며 지지층 결집을 유도했으나, 실제 단 한 차례의 여론조사에서도 이재명 후보를 앞선 적 없다. 이른바 '블랙아웃(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 진행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득표율 과반을 넘기도 하고 소폭 밑돌기도 했지만, 선두를 유지하며 우위를 굳혔다.
아울러 김 후보가 10여 년간 정치적 공백기가 있어 국민적 인지도나 인기 면에서 경쟁력이 부족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후보는 유세 초반 '미스 가락' 등 발언들로 구설에 올랐고, 선거 막판엔 자기 딸을 자랑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막내딸을 언급하며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번 대선 패배로 국민의힘 내부 권력 구도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선거로 인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당 지도부가 총사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야당으로 전락한 국민의힘의 당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진 지난 2017년 19대 대선 당시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낙선한 쪽에서는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부상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이철우 사무총장도 함께 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 간의 당권 경쟁이 본격화됐다. 안철수 후보를 앞세운 국민의당 지도부 역시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