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세정 기자] 2022년 3월 10일 새벽. 떨리는 마음으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스쳤다. 윤석열 48.56%, 이재명 47.83%. 단 0.73%P차였다. 민주당 경선 승리 후 20대 대선에 나선 이 당선인은 아깝게 패배했다. 역대 대선 가장 박빙의 승부였다.
"오늘 눈물바다 속에 선대위 해단식을 했습니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늦은 밤 이 당선인이 올린 글에 지지자들은 감정이 북받쳤다. 2만3000개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패배의 책임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리는 글에 지지자들은 '한이 맺혔다'고 했다. 이 글은 이재명에 대한 열광적 지지의 출발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말렸다. 하지만 이 당선인의 눈빛은 꺾이지 않았다. 정치권으로 돌아와 실망한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는 게 패배의 책임을 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재명 정치사의 후반전이 시작됐다.
◆ '77.77%' 신임도…민주당 개혁의 서막
휴식 없이 2022년 6월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곧바로 더 큰 승부수를 던졌다. 당대표 도전이었다. 당원들은 정치개혁을 해낼 적임자로 이 당선인을 택했다. 2022년 8월 전당대회에서 이 당선인은 77.77%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민주당 당대표로 취임했다.
당대표가 된 첫날, 이 당선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중앙당사 지하에 있던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을 지상으로 옮기고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었다. 소년공 출신의 인권변호사다운 첫 행보였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 세상을 떠난 동생이 생각났을지도 모른다.
'당원 중심 대중정당' 만들기라는 이재명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동안 당 안에선 당원들을 '천원당원'이라고 무시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한 달에 천원만 내면 부여되는 당원권으로 투표권까지 얻으려 한다는 지적인데 20대 대선을 전후로 대거 유입된 이 당선인의 지지자들을 겨냥하는 것이었다. 이 당선인은 중앙당사 2층과 전국 시도당에 당원을 위한 공간 '당원존'을 설치했다. 당과 당원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서였다.
대의원 제도를 악용하는 당내 기득권을 격파하기 위해 대의원·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조정했다. 중요 당 현안은 권리당원들이 직접 투표로 결정하게 했다. 2024년부터는 전국대의원대회의 명칭을 전국당원대회로 변경했고, 당원들의 소속감과 효능감을 높여 250만 당원 시대를 열었다.
◆ 검찰의 전방위 공세
하지만 이런 와중에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시작됐다. 윤석열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검찰권을 앞세운 무차별 정치탄압에 나섰다. "검사가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깡패"라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성남FC 후원금, 쌍방울 대북송금, '김문기 발언' 공직선거법 위반 등 이 당선인을 둘러싼 혐의가 줄을 이었고, 검찰 수사는 대폭 확대됐다.
8개 수사부의 검사 60여 명을 동원한 검찰은 이 당선인과 가족,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윤석열 정권의 지지율이 추락할 때마다 어김없이 검찰의 칼날은 민주당과 이 당선인을 향했다. 압수수색은 376회에 달했다.
검찰은 2023년 2월 16일 대장동 사건과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묶어 이 당선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국회로 넘어온 체포동의안은 10표 차이로 재석인원 과반이 찬성하지 않으며 부결됐다.
◆ 지팡이 든 영장심사, 그리고 강서구청장 '대승'
이 당선인은 같은 해 8월 31일 윤석열 정권의 국정 전면 쇄신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검찰은 단식 중인 그에게 9월 18일 대북송금 사건과 백현동 개발 의혹으로 또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3일 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졌고 이번엔 가결이었다. 민주당 내부에서 상당수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확인되면서 친명계와 비명계 사이 극심한 내홍에 휘말렸다.
2023년 9월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받았다. 법원은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며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장기간 단식으로 쇠약해져 지팡이를 짚은 채 영장심사에 출석하고, 또 서울구치소를 나설 땐 교도관에게 90도로 인사하던 이 당선인의 모습이 화제되기도 했다.
검찰을 공격 속에서 살아남으며 지지층의 결속도 더 단단해졌다. 당내 균열은 남았지만, 이 당선인의 정치적 생존이 확인된 계기였다. 직후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이 당선인의 역사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퇴원 후 곧장 진교훈 후보를 지원하러 달려갔고, 윤 전 대통령이 사면한 김태우 전 구청장을 상대로 17.51%P차라는 대승을 이끌었다.
◆ 부산 피습, 4·10 총선 대승, 당대표 2회차
당 지지 기반을 다진 그는 4·10 총선 공천과 전략 정비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정치테러를 마주하게 됐다. 2024년 1월 2일, 부산 가덕도에서 지지자로 위장한 피습범이 개조한 양날 검으로 이 당선인의 목을 공격했다. 극단 정치가 실제 폭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속목정맥 앞부분 65%가 손상되고 9mm를 봉합하는 중상을 입었다.
퇴원 후에는 총선 준비에 더욱 매진했다. 후보 공천 과정에서 '비명횡사'라는 비판도 거세게 받았으나 '윤석열 정권 심판론', '민생 파탄 책임론'을 내세우며 선거 전략을 설계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권의 황태자로 불린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사령탑에 세웠지만 결과는 민주당의 유례 없는 압승이었다. 당내 혁신기구 설치, 현역의원 경선과 결선투표 도입 등 뼈를 깎는 내적 쇄신을 거듭했던 결과였기도 했다.
총선 대승에 힘입어 이 당선인은 2024년 8월 18일 85.4%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로 당대표 연임에 성공했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두 번째였다.
◆ 12·3 계엄…라이브 방송으로 호소했다
2024년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당시 이 당선인은 즉시 SNS 라이브를 키고, "여의도로 모여 달라, 국회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방송을 보고 달려온 시민들이 국회의사당을 둘러쌌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고, 계엄군을 설득해 돌려보내며 시간을 벌어줬다. 계엄 선포 1시간 만에 국회의원들은 계엄해제결의안 정족수를 채웠고, 유혈사태 없이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당시 CNN은 "이 대표와 국회의원들이 계엄령을 해제 투표를 하기 위해 분주하게 울타리를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중계로 국회로 달려갔다"며 "이후 이 동영상은 소셜 플랫폼 X에서 수천만 회 조회되며 입소문을 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비상계엄 이후 혼란한 정치상황을 수습하려 애쓰기도 했다. 계엄 해제와 탄핵을 이끌어낸 K-민주주의의 힘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렸고, 윤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파면 결정까지 끝내 이끌었다. 또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국가적 대비와 AI정당 인프라 구축에 노력을 쏟기도 했다.
◆ 89.77% 경선 승리, 마침내 대권까지
4월 27일, 이 당선인은 89.77%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면서 민주당의 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 최종 선출됐다. 두 번째 본선 무대에 오르게 됐다. 지난 5월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며 잠시 위기가 닥쳐오기도 했지만 사건을 받아 든 서울고법이 재판일을 미루며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6월 3일 대선에서 승리했다. 성남시 상대원시장 빈민촌의 13살 소년공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49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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