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의 배우자 김혜경 여사는 제21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내내 공개 행보를 자제하고 '조용한 내조'를 이어갔다. 자신을 둘러싼 상대 당의 맹공에도 대응하지 않고 종교계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데 공을 들였다. 지난 대선 과정 내내 불거졌던 '김건희 리스크'를 의식했다는 분석과 동시에 '법카 유용' 의혹 상고심 결과에 따른 향후 영부인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여사는 6·3 대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 당선인의 유세 일정에 한 차례도 참여하지 않았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여사가 전국 단위로 유세 일정을 적극 소화하며 광폭 행보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신 종교계를 잇달아 방문하며 '국민 통합' 메시지에 공을 들였다. 김 여사는 이 당선인이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첫 대선 유세를 시작한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조계종 중앙신도회 행사에 참석했다.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전날에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과 가톨릭대 주교관을 비공개로 방문하는 등 종교계와 만남을 이어갔다.
지방 방문 일정도 종교계 예방에 할애했다. 지난달 15일 경북 경주 불국사 방문에 이어 대선을 일주일여 앞둔 같은달 26일에는 경남 합천 해인사와 김천 직지사, 충북 보은 법주사를 찾았다. 다음날인 27일에는 충북 청주 용화사를 찾아 스님들과 간담회를 진행한 뒤 세종에서 개신교 목사들과 만남을 가졌다.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행보도 이어갔다. 김 여사는 지난달 27일 비공개 일정으로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방문해 한센인 주민들의 고충을 듣고 중앙교회와 성당에서 기도를 올렸다. 김 여사는 소록도 방명록에 "아픈 시간을 견뎌온 삶의 자리, 그 용기와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함께 기억하겠다"고 적었다. 대선 전날에는 서울의 한 입양 전문기관을 비공개로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텃밭 호남 민심에도 공을 들였다. 김 여사는 지난달 14일 광주 오월어머니집을 찾아 5·18 유족들과 비공개 면담을 가진 후 빛고을노인건강타운 구내식당에서 배식 봉사를 했다. 같은달 20일에도 광주를 방문해 노인복지센터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자립준비청년 10명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김 여사는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자신을 둘러싼 상대 당의 공개 저격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김문수 후보는 지난달 27일 "지금 세간에 '가방이 가니 법카가 온다'는 조롱과 우려와 걱정, 한숨이 나오고 있다"며 김 여사를 직격했다.
그러면서 "저는 공식행사 이외에 세금을 단 1원도 사적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그렇게 했다"며 영부인의 국정 관여 차단, 대통령 관저 생활비 공개를 약속하기도 했다.
설난영 여사도 직접 나서 김 여사를 비판했다. 설 여사는 지난달 24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7에 출연해 "국민의 세금으로 자기 물품을 구입하는 건 아니다. 나쁜 것 같다"며 "법카 사용하지 마세요. 앞으로는"이라고 직격했다.
법카 유용 의혹은 김 여사가 '조용한 내조'를 택한 결정적 배경으로 꼽힌다. 김 여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전현직 국회의원 배우자 3명 등에게 경기도 법인카드로 10만4000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모두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고 상고심을 앞두고 있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더팩트>에 "김 여사가 조용하면 조용할수록 유리하다고 판단해 전략적으로 무대응을 택한 것 같다"며 "적극 반박하는 대신 '무시 전략'으로 더 큰 의혹 확산을 막고, 비공개 행보로 언론 노출을 하지 않은 건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대선 과정에서는 김건희 여사와 김 여사를 비교하는 난타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지난달 29일 "김건희에 대한 도덕성 검증에 소극적이었던 대선 후보 윤석열은, 임기 내내 부인을 방탄하다가 정치적 곤경에 처했다"며 "지난 3년간 김건희라는 이름으로 참담한 고통의 시간을 겪었는데 다시 김혜경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 여사의 정중동 행보가 '김건희 리스크'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BBS 라디오 '신인규의 아침저널'에서 "(김 여사의 조용한 내조는) 전 정권에서 김건희 여사의 논란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 때문일 것"이라며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김 여사의 향후 영부인으로서 행보도 주목된다. 대선 과정에서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던 김건희 여사가 당선 후 적극 행보를 보였던 것처럼 대선 이후 확정될 법카 유용 의혹 상고심 결과에 따라 김 여사의 행보 보폭이 달라질 여지도 있다.
최 평론가는 "사법 리스크보다 더 주목할 것은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반면교사"라며 "여사 리스크가 윤석열 정권에서 가장 큰 리스크였던 만큼 이를 본 김 여사가 적어도 비슷하거나 연상이 될 만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선에서 공적 영역을 위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