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의 축제 서로 편 가르지 않는 것이 숙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 불린다. 유권자에겐 가수 싸이의 노래 '챔피언'의 가사처럼 '축제'여야 한다. 축제는 함께할 때 즐거움이 배가 된다. 유권자는 축제를 즐기고 있을까? 정치가 지역과 세대 그리고 불평등과 남녀 갈등으로 몸집을 갈라치기하고 있다. '국민 통합'을 외치며 '1+1=2'가 아닌 '2-1=1'의 등식으로 국민 갈등을 먹고 자란 정치가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다시 '통합'을 꺼냈다. 수사에 그쳤던 과거와 이번은 다를까? <더팩트>는 정치권의 단골 메뉴가 된 '국민 통합'은 어떻게 실패했고 이용되었는지를 짚으며 '국민 통합'의 이유를 찾고 실천방향을 모색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철영·신진환·김정수 기자] 제21대 대선의 중요한 화두는 단연 양극화 해소다. 12·3 비상계엄과 헌정사상 두 번째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더욱 극단적으로 갈라졌다. 정치권의 진영 간 확증 편향성을 고취하며 정치적 이익만 좇는 '낡은 정치'를 청산하지 못한 탓이 크다.
각 정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 공동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곧 출범할 새 정부는 새 시대와 새 정치에 대한 열망에 부응해야 할 책무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정치권이 국민 화합과 사회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방안을 모색할 할 필요가 있다.
국민통합은 사회경제적으로 대두되는 몇 가지 갈등만 완화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분출하는 갈등은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단기간에 해소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빈부 격차와 차별적 불평등을 하루아침에 일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하나하나 갈등을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정치는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결국 상호 간 이해와 타협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오랜 세월 난제인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풀 수 있다.
문제는 정치 양극화 심화로 타협의 정치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이념, 지역, 세대, 성별 등 다양한 대립으로 확대되며 구조가 복잡해졌다. 오히려 정치권이 다양성을 외면한 채 오히려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이다. 어려운 민생을 살리자며 국회와 정부가 합의해 출범시킨 여야정 국정협의체는 헌법재판관 임명 등 정쟁에 밀려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내수 활성화와 민생 화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국민연금 모수개혁 등 우여곡절 끝에 국회 문턱을 넘은 쟁점 현안이 부지기수였다.

유경현 전 헌정회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우리 정치의 양극화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2019년 헌정회장 당시 제헌절 기념사에서 (여야를 향해) 이승만과 김구를 싸움 붙이는 일을 그만두고, 국민통합을 위해 큰 정치를 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상대를 포용하는 게 아니라 밀어내는 힘이 강해지고 있다. 구심의 정치보다 원심의 정치가 힘을 얻는 데 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권이 프로파간다(선동)에 치우쳐 플랜(계획) 경쟁에 대단히 취약한 모습이다."
대선 후보들도 나름의 양극화 해법을 제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통합과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민주주의 강국'을 제시하며 통합하는 정치를 통해 K-민주주의 위상을 회복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치보복 관행을 타파하고 탕평인사로 국민 대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분열을 최소화하는 정치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생방송 토론회에서 △야당과 소통을 통한 협치 복원 △편과 무관한 인재 중용을 약속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정치적 지지를 얻겠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일자리는 복지보다 강력한 분배의 수단이며, 사회 통합과 미래 준비의 기반"이라며 일자리에 방점을 찍었다. 이른바 경제비전 'MS노믹스'다. 고용의 문턱을 낮춰 기회의 불공평을 완화하는 한편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풀어 삶의 기본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일자리 중심 성장을 통한 역동적인 경제 활성화로 소득과 자산 등 경제적 불평등 격차를 줄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김 후보는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에 대해선 이 후보와 달리 반대한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는 정치 양극화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들이 각종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공약을 국민에게 제시한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두 후보 모두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을 뿐 구체적 내용은 빠져있다. 경제 회복과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우선순위를 두는 분위기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읽히지만 심각한 수준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정치적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정치권에서도 초집중된 대통령 권력과 권한을 분산하고 국민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김 후보도 대통령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아울러 양극화 해소를 통한 국민통합을 위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의회·선거·정당 제도에 대한 권력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별다른 이견은 없지만 '각론'을 두고서는 여전히 정파적이다. 아울러 이·김 후보는 상대의 텃밭에서 색깔이나 이념을 끝내자고 언급하지만 이는 대선의 단골 메뉴에 그쳐왔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정치 양극화를 해소할 방안과 관련 "국회의원 수를 증원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얘기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지금 의석수 300석을 갖고는 좀 어렵다고 본다.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들은 제도 속으로 모든 갈등 요소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을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한 70석 정도가 더 필요하다. 다만, (국회의원 수를 늘리더라도) 지금 나가는 세비의 총량을 묶으면 된다. 그래서 모든 갈등적 요소 제도권 안에서 토의되는 것들에 대해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시민정치 운동가 우희종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민통합이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봤다. 그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상호 비방만 하고, 그걸 지지자들은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고 있다"라며 "따라서 정치 문화를 개선하는 것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아무리 제대로 (개헌+선거제도를) 만든다 해도 (국민통합이) 어렵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서구권과 달리 취약한 시민권을 강화해 시민의회처럼 시민들을 정치 주체로 만들 필요성을 언급했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 기회를 확대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국회미래연구원(박현석 거버넌스그룹장)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정치 양극화의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는 정치 고관여층이 정당 내부에서 과대 대표되는 현상을 완화하고 유권자들의 다양한 선호가 정치권에서 대표되고 경쟁할 수 있는 정치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호남-진보, 영남-보수 등 지역 정체성과 이념 정체성이 중첩돼 나타나는 기존의 균열 구조를 재편성할 수 있는 정책 의제 적극 제시 △정확한 정보 전달과 팩트체크, 검증 강화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 및 공천제도 개선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는 시대적 과제인 국민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분열과 갈등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길 바란다. 정치 원로 유 전 회장의 간곡한 당부의 말이다.
"지난 대선 때 1%포인트 미만의 득표율로 승패가 갈렸다. 말하자면 진보와 보수는 거의 반반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이 당선될 때는 정당의 대통령이 되지만 된 다음에는 당적을 버리고 국민의 대통령으로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 자기 식구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여백을 남기고 연대해서 같이 가야 한다. 우리 정치권은 나누는 정치를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당을 떠나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시야와 지평을 넓게 봐야 한다.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정말 좋은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좋은 정치를 완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노력하는 모습만이라도 보여주기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