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여의도=송호영 기자] "줄이 어디까지인 거야? 안 되겠다, 나중에 오자."
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주민센터 앞. 투표소 앞에는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정오 무렵에는 대기 줄이 인근 행진빌딩까지 닿았고, 길이는 약 200m에 달했다. 유권자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줄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초반엔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오전 8시 무렵까지는 관내·관외 모두 별다른 대기 없이 투표를 마칠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10시를 넘어서자 관외 유권자 줄이 건물 밖으로 뻗어나갔고, 11시부터는 본격적인 '대기 러시'가 시작됐다. 투표 사무원들은 "지금 줄 기준 1시간쯤 걸린다"는 말을 반복했다.
혼선도 간혹 있었다. 중간에 통행로 확보를 위해 비워둔 공간을 줄의 시작으로 착각한 유권자들이 "도대체 줄이 어디냐"고 되묻는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됐다. 잘못 줄을 선 채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안내받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 시민은 줄을 확인한 뒤 "이대로는 못 기다려, 밥부터 먹고 오자"며 발길을 돌렸고, 다른 이는 "내일 일찍 다시 오자"며 투표를 미뤘다.
손자를 데리고 온 60대 남성은 "관외투표자인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며 "아이를 데려왔는데 뒤에서부터 줄을 서는 것은 무리"라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의동 사전투표소에 모인 유권자 대다수는 직장인이었다. 양복을 차려입고 사원증을 목에 건 채, 이들은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한 눈빛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투표를 마친 한 시민은 "10분만 늦게 왔어도 한 시간을 기다렸겠네"라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전 10시께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급하게 투표소로 뛰어온 이채은(26) 씨는 "생각해 보니 점심시간에는 줄이 길어질까 봐 미리 왔다"고 했다. 증권사에 근무한다는 이 씨는 "아무래도 나라 경제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는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며 "제가 주식 시장에 있다 보니, 주식 시장을 부양시킬 있는 후보가 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철야근무 후 곧장 투표소를 찾은 김주은(31) 씨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씨는 "지금 대통령 자리가 너무 오랫동안 공석이어서, 그 자리가 빨리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대선 후보자 TV토론을 언급하며 "심란했지만, 결국엔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책이나 기반들을 재정비해야 할 것 같다"며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힘든 상황인데 그것을 잘 챙겨줄 사람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투표 직후 다시 회사로 향했다.
출장 전 투표를 마친 허명선(58) 씨는 "그저 정말 일 잘하시는 사람을 뽑고 싶다"며 "사실 당연한데, 나라가 안정되길 바란다"며 "국민을 잘살게 할 수 있는 사람, 경제를 잘 살릴 수 있는 사람, 그것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권모(35) 씨는 "예전부터 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징하다"며 "박근혜 정부 때부터 계속 보고 있었는데, 어느 쪽이나 비슷하다는 느낌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뭐가 됐든 잘하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잘 못하니까 제가 여기 나와서 투표하고 그런 것 아니겠느냐"라고 되물었다.
직장동료들과 함께 투표장을 찾은 손은석(50) 씨는 "어찌 됐든 빨리 투표해서 마음속에 있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었다"며 "앞으로는 네 편 내 편 가르지 말고, 함께하는 통합적인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마친 뒤 안내판 앞에서 손등의 도장이나 인증 종이를 들어 보이며 인증 사진을 남겼다. 손 씨 역시 동료들과 함께 인증샷을 찍으며 웃음을 지었다.
한편 이날 여의동 주민센터에서는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이 사전투표를 진행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전체 유권자 4439만1871명 중 547만6054명이 투표해 투표율 12.34%를 기록했다. 이는 제20대 대선 같은 시각의 10.48%보다 1.86%p 높은 수치로, 역대 최고 투표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