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6·3 대선을 2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각자의 개헌안을 꺼내며 정면충돌했다. 현행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4년으로 임기 축소하는 데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 후보는 '연임제', 김 후보는 '중임제'를 제시하고 있다. 비슷한 듯 다른 개헌론 주장엔 서로 다른 정치적 셈법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후보는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 구상을 내놓았다. 재신임 여부에 따라 최대 8년까지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행 5년 단임제가 임기 말에 권력이 누수되는 '레임덕' 현상으로 인해 국정 운영과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인 국정 운영으로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겠단 의도다. 이 후보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통령의 책임을 강화하고 권한은 분산하자"면서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으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 책임성 또한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가 연임제를 제안한 배경에는 압도적인 여론 지지율이 뒷받침된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회사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8~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선 후보 지지도는 이 후보가 50.6%, 김 후보가 39.3%로 기록됐다. 이 후보는 이번조사 뿐 아니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속적으로 과반이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기 때문에 장기적 리더십에 대한 자신감이 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김 후보는 '4년 중임제'에 차기 대통령 임기 3년 단축하겠단 구상을 내놨다.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를 일치시켜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겠단 것이다. 국회 의석 수에서 절대적으로 열세 국민의힘 입장에선 조급할 수 밖에 없다. 민주당은 현재 단독으로 171석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야 4당까지 포함하면 범민주당 진영 의석은 190석에 달하는 반면 국민의힘 의석 수 107석에 불과하다.
이번 대선에 승리하더라도 여소여대 정국이 재현될 시 국정 운영이 마비 등 윤석열 정부 당시의 갈등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줄여서라도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려는 김 후보 측의 구상이 대선 승리와 동시에 입법권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 후보는 "2028년 총선과 차차기 대선을 일치시키기 위해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는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시켜 과감한 정치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안한다"고 했다.
양측은 서로의 개헌안을 놓고 날 선 대립각을 세웠다. 김 후보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이 후보에게 '연임제'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김 후보는 "4년 '중임제'는 한 번 재선의 기회를 허용하되 그 기간이 8년을 초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며 "그런데 '연임제'는 대통령이 2회 재임한 후에는 한 번 쉬고 다시 2회를 재임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 후보의 개헌론을 겨냥한 비판에 당 선대위도 가세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매번 선거에 맞춰 던지는 정치적 카드로 보인다"고 했고, 나경원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이 후보의 푸틴식 장기 집권 개헌에 국민은 속지 않는다"며 "이 후보가 슬쩍 끼워 넣은 연임 두 글자에서 푸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은 "4년 연임제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차기 대통령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며 받아쳤다. 황정아 민주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연임과 중임도 구분하지 못하는 김 후보와 국민의힘이 정말 한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탄핵이 시급한 상황에도 '개헌' 노래를 불러놓고선 새로운 헌법을 준비하자고 제안하자며 정치 공세부터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정치권 일각에선 양측이 각자의 정치적 셈법에 근거한 형식적 개헌 논의만 띄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후보의 개헌 논의에 진정성이 없다"며 "국민에게 듣기 좋은 말만 던지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대선을 앞두고 개헌논의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박 평론가는 "서로 ‘짜장면이면 짬뽕’ 식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정치 환경에선 개헌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단계적으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포인트)다. 조사는 무선 임의걸기(RDD) 표집틀에 100%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2.8%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