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송호영 기자] 선거 때마다 후보를 대변하는 슬로건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잘 만들어진 슬로건은 선거의 향배를 좌우하기도 한다. 역대 대선 당선인들의 슬로건이 그랬다. 자신의 강점을 부각하고 약점은 최소화하는 식이었다. 반면 이번 21대 대선 후보들의 슬로건은 이와 묘하게 다르다는 해석이 나온다.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는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슬로건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친근함을 내세워 민심 공략에 성공하면서도 '전두환의 동반자'라는 이미지까지 덜어낼 수 있었다. 당시 통일민주당의 김영삼(YS)과 김대중(DJ)이 단일화에 실패하는 등 대선 판세 역시 나쁘지 않았다. 이에 노 후보는 36.64%의 득표율로 당선될 수 있었다.
15대 대선은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직후 진행됐다. 이때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한 DJ는 '경제를 살립시다'와 '준비된 대통령'이란 점을 강조했다. 이같은 슬로건은 DJ를 향한 부정적 인식을 희석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DJ는 정계 은퇴를 번복한 데다 71세라는 고령이었던 까닭에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미지 전환에 성공한 그는 40.27%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었다.
DJ의 슬로건은 이후 여러 번 재해석됐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준비된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했다.

이번 21대 대선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지금은 이재명'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민주당은 해당 슬로건이 12·3 계엄 사태를 극복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영호 민주당 중앙선대위 홍보본부장은 지난 9일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 대한민국 재도약, 통합된 대한민국이 '진짜 대한민국'"이라며 "이 후보만이 이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새롭게 대한민국, 정정당당 김문수'라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새롭게 대한민국'은 좌우·남녀·지역 갈등과 부조리 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가고자 하는 의지라고 한다.
김철현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번 대선 슬로건이 이전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상적인 대선의 경우 슬로건은 국민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 목표"라며 "하지만 이번 대선은 탄핵에 의한 것이라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후보의 슬로건에 대해 "국민들이 일군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으로 계엄까지 일어난 상황을 부각한다"며 "계엄이 일어난 '가짜 대한민국'을 지나서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란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 후보의 슬로건에 대해선 "탄핵이라고 하는 불편한 이슈를 피하고자 하는 것 같다"며 "'정정당당'이라는 문구를 통해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에 비해 본인이 가진 강점인 청렴성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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