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인생을 걸고 들어온 조국혁신당, 그 안에서 무너졌다."
그는 인생을 걸고 혁신당에 들어왔다. 세상을 바꿔보자며 손을 내밀었던 조직은 정작 피해자 A 씨가 손을 내미는 순간 외면했다.
혁신당 내부 성비위 피해자 A 씨가 마주한 것은 동료들의 2차 가해, 침묵을 강요하는 조직 문화, 그리고 무책임한 지도부의 대응이었다.
A 씨는 당 고위 핵심 당직자 B 씨로부터 약 10개월간 반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11일 여성위원회에 사건을 신고했고, 14일에는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에게 구두로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김 권한대행은 구두 보고는 인정할 수 없다며 서면 제출을 거듭 요구했고, 결국 그는 17일에야 서면으로 피해 사실을 접수했다. 피해자가 스스로 입증하고, 수차례 입을 열어야만 받아들여지는 구조였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동료들의 2차 가해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A, 요즘 출근도 안 한다더라',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다', '일을 안 하고 있는데 무슨 피해자냐'는 험담은 조직 내에서 일상처럼 퍼졌다. "평소 불만을 성추행 사건에 얹어 분노를 키워 분파를 조장한다"는 식의 왜곡까지 뒤따랐다.
A 씨는 점점 조직 내 '불편한 존재'로 몰려갔다. 그는 "'피해자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조심조심 말하고 조심조심 행동해야 한다는 공포도 있었다"며 "이 시간이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인간으로, 엄마로의 존엄마저 흔들어 놓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신보다 더 어린 당직자들의 고통을 들으며 다른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중간에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 뜯겨나가더라도 피해자들이 저를 믿고, 부탁하고, 도와달라고 했다"며 "그 믿음을 지키겠다고, 목숨 걸고 버티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A 씨가 지난 8일 <더팩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사건의 경과와 그 이후의 이야기다.
## A 씨가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하자 B 씨는 "오랫동안 XX를 안 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성적 발언을 했다. 또 지난해 12월 12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 후에도 노래방에서 허리를 감싸는 등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수차례에 걸쳐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성희롱이 이어졌다.
-사건 직후 어떻게 대응했나.
믿고 있던 공간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다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감정을 억누르고 상황을 기록했다. 혼란스러웠다. 어떻게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거리를 두기도 하고, 더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해보기도 했다. 그럴수록 관계는 어색해졌고, 마음도 점점 무너졌다. 이 조직 안에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과 '내가 여기에 계속 있어도 되는 걸까'라는 자책과 혼란이 밤마다 몰려왔다. 그러던 중 피해를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어린 당직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고, 지켜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에 신고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나?
침묵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 쌓인 평온이다. 더 이상 그 평온에 협조하지 않기로 했다. 오래 고민했다. 이 일을 알리는 순간, 내 삶에 어떤 파장이 생길지 너무도 뻔히 보였다. 그러나 '참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강요 속 너무 많은 침묵이 쌓여 있었다.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외부에 알리고 공론화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뭔가?
진실을 밝히는데 '조용함'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내부 절차는 너무 느렸고, 그마저도 '누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내 자신과 피해자들을 지키고 싶었다. 이 사건이 단지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길 바랐다. 조직은 침묵을 유도하지만, 침묵은 곧 방조다. 누군가는 말해야 했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된 것뿐이다.
-당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시점은 언제였나.
아무도 내게 사과하지 않았다. 당은 한쪽 눈만 떴다. 듣는 척, 해결하는 척했다. 조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지만, 진심이 없었다. 피해자에게 공감도, 보호도, 책임 있는 사과도 없었다. 오히려 '이쯤에서 멈추라'는 식의 묵시적 압박만 있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더 환영받는 조직이라는 걸 느낀 순간, 이 조직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2차 가해도 있었나?
2차 가해는 아주 교묘하고, 일상적이며, 지독하게 반복됐다. 익명 공간에서 내 이름이 오르내렸고, 사적인 감정이 문제의 본질로 둔갑됐다.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음해가 퍼졌고, 나를 보호하려 했던 사람들조차 공격받고, 침묵을 강요당했다. 피해자는 늘 조직의 불편한 존재, 조직의 애물단지가 됐다. '피해자는 덮자고 했는데 A가 들쑤셔서 일이 커졌다' '피해자들이 하는 말, 전부 사실은 아니다. 가해자가 억울할 수도 있다' 등의 말이 오갔다.
-당의 대응을 기다리는 동안 어떤 감정이 들었나?
조직이란 이름 아래 개인의 고통은 늘 뒷전이었다. 정의는 구호로 남았고, 공정은 피로감으로 여겨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버티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더는 안 된다. 피해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고 피폐해진다. 더 이상 침묵이 애당심의 척도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혁신당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 젠더 감수성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또한, 조사 기구는 반드시 내부로부터 분리돼야 한다. 자기 식구 감싸기에 익숙한 조직은, 절대 진실을 밝혀낼 수 없다. 외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기관에 사건을 맡기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절차도 신뢰받을 수 없다. 당의 윤리위, 인사위는 이미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 및 황현선 사무총장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당(고위 당직자·의원 등)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 일은 나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당신들이 무대응으로 나선 순간, 이미 가해 구조에 가담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책임 있는 사과 △철저한 진상조사 △외부 독립기구 도입 △피해자 보호 원칙의 제도화. 혁신을 구호로만 외치지 마라. 혁신은 고통의 현장에서 행동으로 시작돼야 한다.
한 사람의 침묵 뒤에는 열 사람의 강요가 있다. 나는 그 강요에 저항하려 한다. 조직은 무너져도 사람은 남는다. 그리고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정당만이 진짜 혁신을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건 '누가 더 옳은가'가 아니라,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다. 저는 그 싸움의 한가운데에서, 끝까지 진실을 말할 것이다. 나의 말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작은 빛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