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인력 확충 등 검찰개혁 구상을 한층 선명하게 밝혔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검찰 특수부 라인을 문제 삼는 데 그쳤지만, 최근에는 조직 구조 개편 수준으로 발언 수위를 끌어올렸다. 정치권은 사법리스크 해소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이자 지지층 결집을 겨냥한 전략적 행보로 해석하고 있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15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도올 김용옥 교수, 유시민 작가와의 대담에서 "기소하기 위해 수사를 하게 하면 안 된다"며 "수사와 기소는 분리해야 한다. 법무부 안에 있든, 어디 있든 수사 담당 기관과 공소유지 기관은 분리하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수사기관 간 경쟁의 필요성을 강조한 그는 공수처 기능 강화를 비롯한 권력기관 개편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전 대표는 "지금 공수처에 검사가 너무 없다. 인원을 줄여놨다"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독립성·역량도 강화하고, 그다음에 기소청, 공소청, 수사청을 분리해 견제하도록 해서 수사기관끼리 상호 견제하고 서로 수사하게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권력의 본성이 그래서 권력은 견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도 뒤따랐다.
이같은 발언은 민주당 의원들이 주장해 온 검찰개혁 기조와도 궤를 같이한다. 당 검찰개혁TF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 등을 뼈대로 하는 제도 개편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대표 재임 때는 해당 구상과 거리를 둔 채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자칫 '정치보복'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2월27일 SBS '정치컨설팅 스토브리그'에 출연한 이 전 대표는 검찰개혁 문제에 대해 "검찰을 없애면 기소와 공소 유지는 누가 하겠나"라고 말했다. 검찰 조직 자체보다는 일부 특수부 라인으로 개혁의 범위를 좁힌 셈이다. 이 전 대표는 "제도는 필요한데 지휘하는 사람이 문제"라며 "칼은 잘못이 없다. 의사의 칼이 되기도 하고, 강도의 흉기가 되기도 한다"라고 언급했다.
이 전 대표 발언의 선명화는 공직선거법 2심 무죄 선고로 사법리스크가 일정 부분 해소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진보진영 일각의 '검찰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응답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읽힌다.
검찰개혁에 목소리를 높이던 조국혁신당도 이 전 대표의 발언에 환영 입장을 밝혔다. 김보협 혁신당 수석대변인은 "이 후보의 검찰개혁 공약은, 조국혁신당의 검찰개혁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며 "6월3일 대선일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바로 논의를 시작해 관련법안을 통과시키면 된다"라고 밝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전 대표의 메시지 전환이 단순한 표현 수위 조절을 넘어선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개혁은 민주당이 줄곧 내세워온 상징적 의제지만, 사법리스크가 지속되던 국면에선 이 전 대표는 상대적으로 절제된 어조를 유지했다. 리스크가 해소된 현시점에서 다시 꺼내든 이번 발언은, 중도 확장과 개혁 성향 지지층 재결집이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고려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다만 개혁을 역설하면서도 정치보복에 대한 선은 분명히 긋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인생사에서 누가 절 괴롭혔다고 보복한 적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기존 지지층에게는 단호한 개혁 의지를, 중도층에는 안정적 국정운영에 대한 신호를 동시에 보내는 의도로 읽힌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사법리스크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도 있을 테고, 원칙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걸 지지층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전에는 대통령 행세하느냐는 역풍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부드러워졌지만 할 건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가 기존 입장을 연장한 것일 뿐 확대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공수처 강화나 수사·기소 분리는 오래전부터 주장한 방향"이라며 "새로운 메시지라기보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대선 정국을 앞두고 이를 선명하게 드러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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