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비사㉟] 베트남 해역서 '두 번' 납치당한 한국 선원들
  • 김정수 기자
  • 입력: 2025.04.13 00:00 / 수정: 2025.04.13 00:00
무장 해적에게 붙잡힌 24명 한국인
소지품 뺏긴 뒤 지방정부로 인계돼
군인들 돌연 총기 난사…'몸값' 요구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91년 3월 21일 한국인 선원 24명이 해적에게 납치돼 금품을 빼앗기고, 베트남 지방성에 넘겨진 뒤에는 몸값을 요구받았던 당시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91년 3월 21일 한국인 선원 24명이 해적에게 납치돼 금품을 빼앗기고, 베트남 지방성에 넘겨진 뒤에는 몸값을 요구받았던 당시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1991년 3월 21일, 한국인 선원 24명이 승선한 참치잡이 어선이 말레이시아 동쪽 공해상에서 해적에게 피랍됐다. 해당 선박은 교신이 모두 끊긴 상태로 열흘 넘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4월 3일 밤 11시 13분, 선장 서 모 씨가 자신이 소속된 선박 회사로 무전을 거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수기로 기록된 전화 통화 내용.

선장 : 서 선장입니다. 감도 있습니까?

회사 : 목소리 들으니 정말 반갑습니다. 현재 선원들 모두 이상 없는지 또한 귀선 상황과 피해를 보고 바랍니다.

선장 : 현재 선원 24명 모두 이상 없습니다. 선원 관물과 선박 장비 등을 탈취당한 상태입니다.

회사 : 납치범의 숫자와 납치 일시, 장소 등을 알려주시오.

선장 : 해상 강도 출몰 일자는 3월 21일 12시로 현재 선박 위치는 북위 10도, 동경 106도 30분입니다. 해상 강도는 5명 이상입니다.

회사 : 현재 통신 수단은 어떤 방법입니까?

선장 : 납치범들이 모든 통신 수단을 없앴습니다. 본 통신도 강도범들 모르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지고 있던 마이크로폰을 어떤 선에 연결해 비밀리에 행하고 있습니다.

회사 측이 기록한 선장 서 씨와의 통화 내용. 회사 관계자는 선장의 목소리는 가라앉았으며 힘이 없었지만 침착한 편이었다며 통화 도중 잡음 속에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많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볼 때 본 선박이 다른 선박이 많이 있는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적었다. /외교부
회사 측이 기록한 선장 서 씨와의 통화 내용. 회사 관계자는 "선장의 목소리는 가라앉았으며 힘이 없었지만 침착한 편이었다"며 "통화 도중 잡음 속에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많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볼 때 본 선박이 다른 선박이 많이 있는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적었다. /외교부

회사 : 이런 통신 방법은 상당히 위험하니 주의가 요망됩니다. 선원 중 환자나 식사 등 환경은 어떠한가요?

선장 : 선원 모두 건강하며 하루 두 끼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 : 납치범의 요구 조건은 무엇입니까?

선장 : 돈으로 보입니다. 차후 어떤 루트로 연락한다고 했는데, 그 루트는 현대자동차 사이공 대리점이라고 합니다. 어떤 자가 귀띔하기로는 납치범들은 '쿠롱' 지방성 소속이라고 했습니다.

회사 : 회사에서는 모든 상황에서 선원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차원에서 모든 협상에 응할 겁니다. 선원의 건강과 안전에 선장이 책임자니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선장 : 선장으로서 회항 시 경비 업무 소홀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돼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가족들에게 선원 모두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우리 정부도 이같은 상황을 인지했지만 전면에 나서지는 않기로 했다. 정부가 사건 초기부터 개입한다면 납치범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었다. 이럴 경우 협상이 더뎌질뿐더러 선원들의 안전 역시 보장하기 어려웠다.

당시 회사 측에서도 "이전부터 비슷한 납치 사례가 종종 있었고, 보험을 통한 몸값 지불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빠르다"는 입장이었다. 선박 피랍에 있어 산전수전을 다 겪은 회사 측이 직접 나서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논리였다.

대신 정부는 상황이 악화할 경우를 대비해 방한 중이었던 베트남 외무 차관에게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또 주태국 대사관을 통해 베트남 측과 접촉, 도움을 부탁하기로 했다. 당시는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맺기 전이었기에 공식 소통 라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피랍된 선박에 발견된 총탄 흔적. 당시 정부 기록에 따르면 5명 이상의 해적이 쾌속선을 이용해 무차별 난사, 선박을 점령했다. /외교부
피랍된 선박에 발견된 총탄 흔적. 당시 정부 기록에 따르면 5명 이상의 해적이 쾌속선을 이용해 무차별 난사, 선박을 점령했다. /외교부

정부는 선원 구조에 따른 후속 조치도 마련했다. 이번 피랍이 베트남 '영해'에서 발생했다면 베트남 측과 교섭을 개시해 납치범의 처벌을 요구할 방침이었다. 반대로 사건이 '공해'에서 발생했다면 국제관습법에 따라 베트남 측에 납치범 처벌과 선원의 조기 석방을 요청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우선 선장 서 씨가 알려준 대로 현대자동차 사이공 대리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대리점 쪽에서는 납치범들에게서 연락이 온 적 없다고 답했다. 선장 서 씨의 전화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납치범들과 접촉할 방법이 사라지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러던 중 납치범들은 돌연 서 씨 등 한국인 선원 전원을 베트남 '쿠롱' 지방성에 넘기고 도주해 버렸다. 서 씨와 선원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어쨌든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무리의 군인들이 서 씨 등에게 다가와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 씨에게 '영해 침범 확인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납치를 당한 것도 모자라 졸지에 베트남 영해를 침범한 범죄자가 돼 있던 것이었다.

이때 '납치범과 군인들이 동일범이다'라는 생각이 서 씨의 머리를 스쳤다. 앞서 서 씨는 회사 측과 통화할 때 "어떤 자가 귀띔하기로는 납치범들은 '쿠롱' 방위 사무소 소속이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었다. 납치범이 서 씨 등을 넘긴 곳 역시 '쿠롱' 지방성이었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군인들 역시 이곳 소속이었던 것이다.

때마침 회사 측 관계자가 현지에 도착하면서 쿠롱성 측과 대면할 수 있었다. 쿠롱성 측은 선박이 자국 영해를 침범했기에 벌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 씨가 이들의 강요로 인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진술서 등을 제시했다. 회사 측은 더 큰 문제로 번지기 전에 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제야 서 씨 등을 비롯한 선원 모두 풀려날 수 있었다.

당시 정부가 물밑에서 파악한 사건의 전말도 '베트남 지방성과 해적 간 결탁'이었다. 해적들이 선박을 납치해 금품을 갈취하고 베트남 영해 안쪽으로 배를 옮기면, 지방성 당국은 해당 선박이 영해를 침범했다며 금전을 요구하는 식이었다. 중앙 정부가 존재하지만 지방성의 독립성이 강한 베트남 체제 특성상, 당시엔 이같은 일이 번번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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