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다빈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의견이 담긴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현수막 속 원색적 표현에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틀간 서울 광화문과 헌법재판소, 4·2 재보궐선거를 앞둔 구로구 일대를 직접 둘러본 결과 거리 곳곳에서 정치 현수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로 코스트코 앞 횡단보도 가로수 사이 현수막 3개는 보행자 동선을 방해할 정도로 낮게 설치돼 있었다.
삼환로즈빌 아파트 앞에 걸린 국민의힘 현수막은 신호등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이 차도로 뛰어들어 신호를 확인하는 위험한 장면도 목격됐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낮게 걸린 자유민주당 현수막에 한 시민은 머리를 부딪힐 뻔해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했다. 자유민주당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높게 걸려면 전신주나 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적당한 곳이 없으면 낮게 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거리를 점령한 현수막에 시민들 불만은 컸다. 일부는 "불쾌하다", "찢어버리고 싶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대학생 김수지(25) 씨는 "지역 특성에 맞는 현수막이나 국회의원이 어떤 일을 추진할 계획인지 알려주는 현수막을 걸어야 하는데 지금은 서로를 비방하는 내용밖에 없다"며 "우리 지역구에 있는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지역구민을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면 좀 아깝다"라고 비판했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던 권혜지(29) 씨는 "(현수막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도로 상황이 안 보여 불안하다. 낮게 걸려 있어 불편했던 적도 많다"며 "정당들이 마주 보고 현수막을 걸어 놓고 기싸움 하는 걸 왜 우리가 봐야 하냐. 산불 피해 복구나 도왔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구로구청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은현(53) 씨는 "(현수막이) 가게 간판을 가려 답답할 때가 많다"며 "(불법 주차된) 차량은 빼라고 하면 되지만 현수막은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운전자들의 불편도 이어졌다. 택시 운전 경력 9년 차 박봉관(72) 씨는 "운전하다 보면 현수막 글자가 눈에 들어와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있다"며 "세금으로 저걸 걸 바엔 화재 피해민이나 수재민 돕는 게 백배 낫다"고 꼬집었다.
트럭 기사인 권남국 씨(59)도 "정치 성향을 떠나서 안 했으면 좋겠다"며 "행인한테도 운전하는 사람한테도 위험한 일이다. 우회전할 때 시야를 가리니까 위험하다"고 호소했다.
한때 선거철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됐던 정치 현수막은 규제 완화로 상시 게시가 가능해졌다.
현행법상 현수막은 지면에서 본체는 2.5m 이상, 아래 끈은 2m 이상 띄워야 한다. 교차로 가장자리로부터 5m, 횡단보도로부터 10m 이내 등에는 설치가 금지된다. 정당 현수막은 같은 장소에 최대 2개까지 걸 수 있다. 지난해 설치 기준을 강화하는 시행령이 도입됐으나 현장은 여전히 법을 무시하고 있다.
현수막의 실효성을 두고 입장은 엇갈린다. 정당 관계자들은 "효과가 있다"고 입을 모았지만 전문가들은 의문을 표한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시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책임 규정은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통화에서 "현수막의 효과가 크지 않다.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그리 크지 않다"며 "환경 오염 문제뿐만 아니라 교통 약자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특히 사고 발생 시 이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