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헌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이 오는 4일로 지정됐다.
국회 탄핵소추 이후 111일 간 현직 대통령 사상 첫 체포·구속에 이은 구속 취소까지 잇따라 '사상 초유'라는 역사를 쓴 윤 대통령의 거취도 이날 결정된다.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4일 오전 11시에 진행한다고 1일 공지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2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지 111일째 되는 날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지난 1979년 이후 45년 만이자, 국무위원들은 물론 대통령실 참모들 대다수도 미리 인지하지 못한 기습 발표였다.
그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야당의 공직자 줄탄핵과 예산 삭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국회는 즉각 대응했다. 경찰의 출입 봉쇄를 뚫고, 계엄군의 진입 위협 속에서 의원들은 하나둘 본회의장으로 모였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190명이 모여 다음날 오전 1시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했고,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후 윤 대통령은 3시간 여가 지난 오전 4시 20분 다시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개혁신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야6당은 이날 오후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어 7일 본회의에 상정했는데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표결 불참을 결정하면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범야권 의원 192명에 더해 국민의힘에서는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만 표결에 참여했다.
이렇게 표결이 무산되자 국민 여론은 끓어올랐고, 국민의힘도 한동훈 당시 대표와 친한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단일대오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는 사이 야6당은 12일 두번째로 탄핵소추안을 제출했고,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 당론은 유지하되 표결 참석은 개별 의원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결국 14일 본회의에서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다.
경찰과 공수처, 국방부가 공동으로 꾸린 공조수사본부는 탄핵심판과 별도로 내란죄 수사를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공수처는 지난해 12월 30일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했고, 다음날 영장이 발부됐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도, 발부도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공수처는 경찰의 협조를 받아 1월 3일 오전 체포영장 집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통령 경호처 등이 막아서면서 대치가 이어지자 5시간 여 만에 현장 인원들의 안전이 우려된다며 집행을 중단해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공수처는 기한 연장을 위해 체포영장을 재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공수처가 체포영장 2차 집행을 준비하는 가운데 박종준 전 경호처장이 사임했고, 경찰은 경호처 강경파로 꼽히는 김성훈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 등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경호처 내부에서도 영장 집행 저지에 대한 비판적인 기류가 형성됐다. 공수처는 15일 다시 영장 집행에 나섰고, 경호처가 1차 때와 달리 사실상 길을 터주면서 윤 대통령은 서울구치소로 향하게 됐다.
이어 공수처는 17일 서울서부지법에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19일 오전 2시 50분 영장을 발부했다. 특히 영장심사와 발부 과정에서 서울서부지법 앞에 모인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어 건물로 들어가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부리는 폭동이 발생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도 사상 처음이었다.
그 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21일 3차 변론기일부터 모든 변론마다 출석해 스스로를 변호했다. 비상계엄은 헌법 상 대통령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고, 실제로 국회의원 체포 등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2월 4일 5차 변론기일에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호수 위에 뜬 달의 그림자를 좇아가는 느낌"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탄핵심판에 출석한 대통령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마지막 변론기일인 2월 25일 11차 변론에서 69분 간 최종진술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며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담화를 시작으로 그동안 탄핵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한 내용을 되풀이했다. 아울러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잔여 임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해 87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개헌을 제안했다.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되고 헌법재판관들이 평의를 이어가던 중 윤 대통령 신병에 변화가 생겼다. 서울중앙지법은 3월 7일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이어 검찰이 8일 즉시항고를 포기하기로 하면서 윤 대통령은 석방됐다.
윤 대통령은 석방 직후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지지자들과 여당 등에 감사를 표하는 메시지를 냈다. 다만 그 이후에는 특별한 메시지 없이 차분히 탄핵심판 선고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관저에 머물면서 석방 직후 대통령실 참모와 국민의힘 지도부의 예방을 받은 것 외에는 외부인사와의 만남도 자제해왔다.
이번 선고는 변론 종결 뒤 38일 만이다. 당초 대통령 탄핵심판의 전례를 감안해 3월 중순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재판관들의 평의가 길어졌다. 결과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국민들의 피로도는 높아졌고, 여야는 각자 기각·인용 희망을 담아 조속한 선고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이날 헌재가 선고일을 공지하면서 윤 대통령 운명의 날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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