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동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포한 관세 전쟁에 각국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정상 외교를 가동해 트럼프 대통령과 접촉,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형국이다. 한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됐지만 계엄·탄핵 정국에 따른 정상 공백은 현재진행형이다. 트럼프발(發) 관세 폭풍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연방회의 연설에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4배 더 높다"며 "4월 2일부터 상호관세가 발효되고 다른 나라에 부과하는 관세와 동일한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관세는 미국 기업이 외국에 상품을 수출할 때 적용받는 관세와 동일한 관세를 해당 나라에 매기는 제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고대로라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의 장기화에 따라 효과적인 대응은 미지수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직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한 번 나누지 못했다. 관세 등을 논의할 한미 고위급 협의체 구축도 아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은 비단 한국만 겪는 일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닐 유입을 이유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접촉, 내달 2일까지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에 적용되는 상품의 한시적 면제를 끌어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이후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관세 유예를 받아냈다. 양국 정상은 욕설이 포함될 정도로 격렬한 설전을 주고받았다고 전해졌지만, 캐나다로서는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됐다. 정상 외교가 멈춰버린 한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산 철강·알루미늄에도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포한 바 있다. 그가 예고한 관세 적용일은 오는 12일로 나흘 밖에 남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조정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조정하지 않는다"며 "다음 주에 발효한다"고 선을 그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 적용 국가에는 일본, 호주 등도 포함된다. 다만 일본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대미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그만큼 양국 간 조율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호주는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해 '관세 면제를 고려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상호관세 적용 대상인 인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으로 무역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정상 외교가 불가능한 한국으로서는 고위급 실무 협의체에 힘쓰는 모양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6~28일 미국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 겸 내무 장관 등과 회동했다. 이후 관세, 조선 등 5개 분야 실무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다만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한 상황에서 '만났다'는 의미 외에 구체적인 진전은 없다는 지적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현재 국가수반이 부재중인 한국은 미국과 협상을 할 수 있는 카드가 없어 대응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정국인 한국에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 실질적인 협상을 하게 될 향후 정부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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