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일 비명계 인사와 만나 통합에 공들이고 있다. 그러나 '쓴소리'와 이견에 부딪혀 큰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비명계가 주장하는 개헌론에 이 대표가 진척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실질적 통합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날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회동을 가졌다. 이 대표는 전날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이어 최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박용진 전 의원 등 비명계 잠룡들과 잇달아 만나며 당내 통합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김 지사에게 "지금 정치와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게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같이 고민하자"고 제안하며 통합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김 지사는 이 대표에게 "지금 민주당으로는 과연 정권교체가 가능한 것인지 우려스럽다"며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운을 뗐다.
이 대표가 선을 그은 개헌론도 다시 띄우며 "개헌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정권교체 이상의 교체를 하려면 '제7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여는 것이 필요하다"며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임기 단축 논의가 제대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헌이 탄핵 정국에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이 대표의 발언을 겨냥해서는 "개헌은 블랙홀이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이 대표가 3년 전 대선에서 개헌을 약속한 점도 거론했다.
개헌에 이어 공동정부도 제안하며 '권력 분산'에 초점을 맞춘 대책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지사는 "8년 전 촛불혁명 때는 민주당의 정부에 머물렀고, 빛의 혁명에선 우리가 연합해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압도적 정권교체를 위해 공동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 대표는 여전히 개헌론에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지금은 내란에 집중할 때지만 고민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앞서 김 전 지사와 김 전 총리와의 회동에서도 개헌에 대해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며 입장차를 보였다.
전날 이 대표와 만난 임 전 실장도 개헌 논의를 재차 촉구했다. 임 전 실장은 "많은 분들이 대통령제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며 개헌을 포함한 연합정치 의견 수렴기구 등을 이 대표에게 적극 요구했다.
임 전 실장과 김 지사는 '이재명 체제'에 각을 세우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임 전 실장은 "우리가 더 넓어지기 위해 지금 민주당 구조에서 이 대표와 경쟁하기 위해 용기를 내고 이재명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지지하겠다"며 "앞으로도 대표께 좋은 소리보단 쓴소리를 많이 할 것이고 가까이에서 못하는 소리도 가감없이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이 대표의 '말바꾸기' 논란을 겨냥해 "지금의 민주당은 신뢰의 위기에 놓여 있다"며 "말을 바꿔서도 안 되고 수권정당으로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상속세 개편' 등 이 대표의 감세 정책을 놓고는 "포퓰리즘"이라며 날을 세웠다. 김 지사는 "지금 정치권에서 감세 포퓰리즘이 아주 극심하다"며 "비전 경쟁이 돼야 하는데 감세 경쟁에 몰두하는 현실이 대단히 안타깝다. 지금 필요한 건 감세가 아닌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인 만큼 감세 동결과 재정 투입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 대표가 당선된다면 더 이상 권력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비명계의 위기감이 개헌론에 무게를 더한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이른바 '공천 학살'로 이 대표에게 집중된 힘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더팩트>에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이 대표 당선이 유력한 만큼 비명계로서는 당선 전 이 대표 '일극 체제'를 완화하는 게 최우선 목표"라며 "비명계와 스킨십만 늘린다고 해서 공천 학살같은 옛 앙금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대표가 개헌 해법 등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실효성 있는 당내 통합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대표가 내달 예정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을 경우 권력 분산 논의에 진척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채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이 대표의 개헌 선 긋기는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사법리스크가 재점화돼 불리한 처지가 되면 이 대표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해법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타협책을 꺼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