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시형 기자] 국회 '내란 국조특위'가 25일 5차 청문회를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계엄 사태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기간도 연장했지만 주요 증인들의 불출석과 증언 거부로 청문회 공전이 거듭됐고, 핵심과 다소 관련성이 떨어지는 쟁점을 둘러싼 여야 간 정쟁이 격화되면서 활동 종료까지 '맹탕'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25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5차 청문회를 열고 한덕수 국무총리,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등을 상대로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질의를 진행했다.
여당은 공수처의 '영장 쇼핑' 논란을 질타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공수처가 관할인 중앙지법을 두고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 '영장 쇼핑'이란 말이 나온다"며 "공수처가 공명심 때문에 정도와 법치주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범죄지와 피의자 소재지 모두 서울서부지법 관할이었다"며 "중앙지법에 되려 청구했으면 관할권의 존부에 대해 판사님이 많이 고민을 하셨지 않을까 싶다"고 해명했다.
오 처장의 해명에도 여당의 질타는 계속됐다.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은 "내란죄도 (수사할 수) 없는데 수사하고 재직 중에 소추받지 않는 직권남용으로 현직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이같은 선례로 인해 대통령이 다 수사받게 생겼다"고 비판했고, 이에 오 처장은 "공수처는 무엇보다도 적법절차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독립된 수사기관의 위상을 해하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과도한 비난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야당은 비상계엄 사전 모의 의혹을 받는 대통령경호처의 '비화폰' 관련 수사를 촉구하며 검찰과 공방을 벌였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김성훈 경호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수차례 기각해 비화폰 서버 압수수색을 막고 있다며 "비화폰 서버가 내란의 블랙박스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이진동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그건 별건 수사인데 별건이라도 수사를 하라는 것이냐"고 맞섰다.
야당의 지적에도 박종준 전 경호처장은 비화폰 관련 기록 삭제 지시가 담긴 문건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박 전 처장은 '김 차장이 단말기 삭제 지시를 했다는 것인데 처장이 모르나', '30년 경찰 생활을 했는데도 모른다는 것이냐'는 민 의원의 질의에 재차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같은 당 윤건영 의원은 "김 차장은 비화폰 서버가 이틀이 지나면 자동 삭제된다고 했는데 포렌식으로 복구가 가능하다"며 "일년 치 통화기록도 서버에 남는 게 맞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여야는 계엄 사태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쟁점으로 정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특위 위원인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해 한 지지자와 함께 '윤석열 참수'라고 적힌 모형 칼을 들고 사진을 찍은 것을 두고 이날 "극단적인 표현을 한 문구가 새겨진 도검을 든 건 지나치고 과했다"며 "(윤 대통령이) 아무리 피의자 신분이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인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에 김 의원은 "도검에 적힌 글자를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다"며 "제 불찰이라고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의 목소리라고 본다"고 답했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자신을 둘러싼 홍 전 차장의 '메모' 가필 의혹을 해명하는 데 발언 시간을 할애했다. 박 의원은 "공개적으로 필적 감정을 열 번 백 번 해 드리겠다. 한글을 읽을 줄 알면 다 알 수 있다"며 "홍 전 차장과 단 한차례도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는데 국민의힘의 물타기 공작이 가련하고 처절하고 불쌍하다"고 비판했다.
여당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종결을 앞두고 야당의 입법 폭주도 재차 비판했다. 한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향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결정이 나기 전에 대통령을 먼저 탄핵하기 위해서 헌법재판소가 심리를 서두르는 게 아니냐"며 "거대 야당은 법과 상식을 무시하고 29번의 탄핵안을 발의하는 등 일방 폭주를 하고 있다. 국정의 어려움을 평가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안규백 위원장이 "국정조사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자 한 의원은 "마지못해 참석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여당은 계엄 사태의 '핵심 증거' 신빙성도 부정했다. 한 의원은 이른바 '수거 대상' 명단이 적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 신빙성을 문제삼으며 "국과수에서 노 전 사령관의 필적을 두고 감정 불능이라고 통보했는데, 노상원 수첩이 마치 계엄 시작의 방아쇠였던 것처럼 근거도 없이 얘기하는 건 말이 안되는 '코미디'"라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는 주요 증인인 윤 대통령을 비롯해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이 불출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특위는 매 청문회마다 불출석한 주요 증인들의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동행명령에는 강제성이 없어 이들을 끝내 청문회장으로 불러내지 못했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지난달 22일 1차 청문회를 시작한 이래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특위는 야당 주도로 윤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와 김 전 장관이 수감된 서울동부구치소에 현장 방문해 조사를 시도했으나 이들이 끝내 거부하면서 대면조사도 무산됐다.
청문회에 출석한 이들도 증언을 거부하면서 공전이 거듭됐다. 이상민 전 행안부장관은 1·2차 청문회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자신의 형사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증인 선서마저 거부했다.
계엄 당사자인 주요 증인들의 불출석과 증언 거부가 잇따르면서 특위 내에서도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기호 의원은 2차 청문회 당시 "특위 운영에 대해 한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여기 계신 위원님들이 지금 (계엄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을 얼마나 찾았느냐. 국민들이 우리를 볼 때 '새로운 게 뭐가 있느냐'는 의아심이 들 만 하다"고 지적했다.
동행명령장 발부를 놓고도 "(불출석한) 발부 대상자들은 지금 구치소에서 영어의 몸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자신들의 방어권을 가지고 응하지 않는 것인데 안 올 줄 알면서 발령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우습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일한 증인을 매번 불러서 '재탕'과 '삼탕'을 하고, 진짜 진실을 규명하려고 하는건지 정치공세를 하려고 하는건지 국민들이 알 것이다. 국회가 우습게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 간 정쟁에만 몰두하고 계엄 당사자인 주요 증인들의 불출석과 증언 거부가 잇따르며 특위 활동 종료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더팩트>에 "수사 중이거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핵심 증인들이 증언을 하지 않고, 여야 위원들도 서로 호통을 치거나 본질과 관계 없는 질문을 하며 공전을 거듭한 부분은 아쉽다"면서도 "계엄 사태가 국회 안에서 벌어진 만큼 국회로서도 사건 실체 파악을 위해 역할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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