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법안 남발 여전…발의요권 강화 필요성
  • 신진환 기자
  • 입력: 2025.02.24 00:00 / 수정: 2025.02.24 16:45
여야, 사실상 내용 같은 중복 공약 남발
"상임위 중심 발의·공동발의 인원 상향"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40대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김하늘 양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방지책을 담은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40대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김하늘 양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방지책을 담은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국회의 '묻지마 식' 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국민적 관심사인 이슈가 발생한 직후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신속히 대책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의원들의 입법은 고유 권한이지만 소위 '건수'를 올리는 '실적 쌓기'용으로 변질되고 있다. 국회의 입법 생산성 제고를 위해 발의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먼저 지난 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40대 교사 A 씨가 휘두른 흉기에 김하늘(8) 양이 피살되는 사건이 터졌다. A 씨는 지난해 12월 우울증으로 휴직을 냈다가 3주 만에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고 복직한 뒤 불과 40일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해당 사건은 배움의 터인 학교마저 안전하지 못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키우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재발 방지책을 담은 법안들이 쏟아졌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범행 발생 이틀 뒤인 12일부터 19일 현재까지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10건이 발의됐고, 이 중 2건은 철회됐다. 정상적 직무수행이 어려운 교원의 즉시 휴직을 골자로 한 법안을 제외한 나머지 7개 법안은 정신적·신체적 질환 교원의 교직수행 여부를 심의하는 기구 설치 의무화나 기존 위원회를 통합하고, 정신질환 등 각종 질환 교원의 재직 적격성 심의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각 시도교육청에서 정신적 질환으로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교사를 대상으로 휴·면직을 권고할 수 있는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운영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각 법안의 제안 이유와 정신질환 등 여러 질환의 교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의 규정을 둔 핵심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정부가 고위험 교원에 대한 긴급 분리 조치와 복직 심의를 강화하겠다는 방침과 유사하다. 지난 14일까지 국회에 접수된 법안 5개에 대해 교육위원회가 심사하고 있다.

또한, 대전 초교생 피습 사건을 계기로 학교마다 전담경찰관을 상주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지난 13일 이후 엿새 동안 법안 4건이 발의됐다. 국민의힘 김소희·김도읍 의원,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내용 자체가 거의 같다. 학교전담경찰관이 학교폭력 외에 교내 범죄 전반을 다루도록 업무와 권한을 강화하는 비슷한 내용이 빠짐없이 있다.

22대 국회에서도 의정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문구를 조금 바꾸는 식으로 사실상 거의 내용이 비슷한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더팩트 DB
22대 국회에서도 의정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문구를 조금 바꾸는 식으로 사실상 거의 내용이 비슷한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더팩트 DB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한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씨의 사망 사건 이후 관련 법안들의 발의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 대다수는 직장 내 괴롭힘 요건에 지위와 관계없이 '지속적·반복적'인 기준으로 다양화하고, 근로자의 범위를 확대해 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근로자성을 엄격히 요구하고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는 것'으로 규정한 현행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법안들이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걸그룹 뉴진스 하니가 출석해 소속사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고용노동부는 현행법상 대중문화인인 하니는 노동자가 아니기에 직장 내 괴롭힘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소송당사자인 근로자가 관련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플랫폼노동자와 프리랜서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근로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일명 '오요안나법'안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여야 의원들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는 행태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왔다. 특히 국민적 관심사인 사건과 관련 있는 법안들을 쏟아냈다. 과잉 입법, 법안 남발이다. 따라서 처리된 법안보다는 계류된 법안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안 쪼개기', '법안 품앗이', '법안 재활용'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대체로 법안 발의 자체에만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상 같은 내용의 '중복 법안' 발의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 검토보고서와 검토 의견을 제출해야 하는 국회와 정부의 업무 부담을 덜고 입법 활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서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입법팀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정돈된 법안 발의가 필요하다"라면서 더욱 내실 있는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법안을 내거나 현행 10명인 공동발의자 인원을 상향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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