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동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제안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개시됐지만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철저히 배제됐다. 이에 따라 향후 북미 정상회담 재개 과정에서 한국이 제외될 우려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19일(이하 현지시간)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수석이 주최한 온라인 대담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종전 협상을 진행한 것을 한국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 패싱'을 언급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한국에서는 '서울 패싱'에 대한 불안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유럽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의 참여 없이 미국과 러시아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며 충격에 빠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분석은 향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주도하에 러시아와 단독으로 종전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제외됐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겨냥해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자신의 뜻을 어떻게든 관철하고자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한국인들이 이를 보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협상에서 배제하고 (북한과) 대화할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패싱 우려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존재했다. 지난 2018년 북미 양국은 정상회담 추진을 양국 간 직접 협상으로 진행했다. 이로 인해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인 한국이 배제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북미 회담의 매개체 역할을 자임했다. 다만 그 한계에 따른 지적을 일축하진 못했다.
한국이 발휘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은 당시보다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탄핵 정국으로 인해 정상 외교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직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조차 나누지 못했다.
최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천명되기는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예측 불가 그 자체다. 빅터 차 CSIS 한국 수석은 지난 18일 '트럼프 행정부 미국 동맹과 파트너십' 세미나에서 백악관은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실제 협상은 핵 동결 등 다른 쪽으로 결론 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시절보다 북미 대화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김 위원장을 여러 차례 언급했고 최근에는 그를 '스마트 가이'라고 표현했다. 동시에 '(김 위원장에게) 다시 연락하겠다'며 대화 재개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미 그는 지난 북미 정상회담에서 활약한 참모 다수를 2기 요직에 발탁해 뒀다.
스티븐슨 전 대사는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으로 대미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현실에 대해선 "서울 패싱 여부는 아시아 정책을 담당하는 미국 행정부에 누가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첫 몇 주간이 얼마나 격동적이고 혼란스러웠는지를 생각하면 (대화의) 선두에 서지 않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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