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최근 국회에서 열리는 토론회가 '정책 논의의 장'이 아닌 차기 대권 주자들의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공식적으로는 조기 대선을 언급할 수 없는 여당의 경우, 토론회를 사실상 잠재적 대선주자들의 ‘세(勢) 과시’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차기 대권주자가 주최하거나 참석한 국회 토론회에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가 떠난 뒤 행사장이 썰렁해지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또 토론회마다 어느 현역 의원이 몇 명 참석했는지, 어떤 토론회에 더 많은 의원이 모였는지를 비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난 19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석한 ‘2030·장년 모두 윈윈(Win-Win)하는 노동개혁 대토론회'(나경원·우재준 의원 주최)에도 60여 명에 육박하는 여당 의원이 몰렸다. 지난 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여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윤재옥 의원 주최)엔 48명의 여당 의원이 참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원은 행사 초반만 자리를 채웠다. 행사 초반 기념사진 촬영 시 의원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응원을 외치는 모습까지 연출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원들은 개인 일정 등을 이유로 대거 자리를 떠났다. 정작 중요한 정책 논의나 토론이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토론회가 정책 논의보다 정치적 행사로 활용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 시장이 참석한 토론회는 '대선 캠프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김 장관이 참석한 토론회도 마찬가지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개회사에서 "너무 많은 의원님이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역시 (여론조사) 1등이신 분이 오셔서 그런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당내 여론조사에서 1·2위를 차지하는 선두 주자들에게 눈도장을 찍는 것이 목적으로 '줄서기'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조기 대선 참여를 염두에 둔 소극적인 행보로 해석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과거에도 대권주자들이 국회를 찾아 의원들과 소통했던 만큼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면서도 "정책 논의를 해야 할 토론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얼굴만 비추고 가는 행태가 되풀이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토론회에 참석한 의원들이 정책을 꼼꼼히 검토하거나 토론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하고 잠시 앉아 있다 나가는 것은 진정성 없는 태도"라며 "국민에게도 큰 울림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의원들은 영혼 없는 행태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