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시형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실용주의' 행보가 삐걱대는 모습이다.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 예외 문제부터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까지 말바꾸기 비판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여당과의 주도권 싸움에만 집중했다는 지적과 함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른바 '우클릭' 행보에 대한 국민의힘의 비판에 "지금 나라 경제가 얼마나 나쁘냐. 세상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는데 변하지 않는 건 바보"라고 반박했다.
이어 "민주당은 원래 경제 중심 정당이다. 경제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정당이 어디 있나"라고 반문하며 "지금 경제가 매우 어려우니 경제 성장에 좀 더 방점을 찍고 있는 거지 복지와 분배를 다 버리고 오로지 성장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상속세 완화 추진을 놓고는 "감세하자는 게 아니라 증세를 막자는 것"이라며 "(여당의) 초부자 감세안 말고 과표구간이 그대로 유지된 월급쟁이들의 부당함을 고치자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최근 수도권 거주 중산층을 겨냥해 최대 18억 원까지 공제 한도를 높이는 상속세 완화 추진을 제안했다.
이에 여당은 "경제는 이재명이 아니라 '말바꾸기 이재명'이 맞는 표현"이라고 날을 세웠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날 비대위 회의에서 이 대표를 향해 "상속세 개편과 관련한 가벼운 언사로 이 대표 특유의 '무책임 정치'가 이번에도 드러났다"며 "우클릭하는 척만 하면 되니 일단 던지고 보자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전 국민에 25만 원씩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추경안도 이 대표가 "포기할 수 있다"고 밝혔던 민생회복지원금 예산의 이름만 바꿔 사실상 되살렸다는 평가가 나오며 '말바꾸기' 비판이 제기됐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정부여당에 추경을 촉구하며 추경 편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민생회복지원금을 요구사항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 13일 전 국민 5122만 명에게 1인당 25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예산이 담긴 자체 추경안을 정부여당에 제안했다.
이에 "깃털만도 못한 이 대표의 말의 무게"라는 여당의 비판이 일자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민생 회복을 위해 더 좋고 효과적인 사업을 (여당이) 제안하면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는데 아직까지 아무 얘기가 없지 않느냐"며 "아무런 조처가 없는데 민생을 위한 핵심 사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반도체특별법의 근로시간 예외 조항과 관련해서도 기존 당내 기조와 달리 유연성을 늘리는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당 안팎과 노동계의 비판에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관련 토론회에서 "가능하면 노동 시간에 예외를 두지 않아야 좋다고 생각하지만 총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으면서 R&D 고소득 전문가들이 한쪽으로 몰아서 일하게 해달라는 말을 거절하기 어렵다"며 "구더기가 무서우니 장을 못 담그는건 안 된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총 노동시간의 변동 없이 일을 몰아서 할 수 있게 하자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반도체 산업에만 주52시간제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민주당 내 기조와 충돌하며 당내 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주52시간 예외는 노동 총량을 유지하되 유연하고 탄력적인 근로시간 조정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노사간 오해를 풀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답을 찾아나가면 된다"며 노동시간 예외 조항 없이 반도체법 우선 처리를 촉구했지만 노동계의 비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의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한 '주69시간' 노동에 대해 '화끈하게 망가질 것'이라고 평가한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폐기하는 반노동적 행보"라며 "'오락가락' 행보와 반노동·친자본 우클릭 반도체법 추진을 강력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조기 대선을 의식해 '설익은 우클릭'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당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의도로 보이지만, 충분한 당내 합의도 거치지 않고 당내 기조를 뒤집은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실용주의를 고수하는 정책 강공 드라이브 대신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 대표의 이같은 행보는 조기 대선 국면에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정책을 바꾸려면 확실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당내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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