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동현 기자] 북한 내 시장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주민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통일연구원은 '북한 주민의 시장 생활' 보고서를 통해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계층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을 조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90년대 북한에 닥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인 '고난의 행군'은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했다. 배급제 붕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시장 경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장마당(시장)'이 확산하면서 2003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종합 시장'이 등장했다.
종합 시장은 현재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북한 시장의 공식 명칭으로, 북한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시장은 당국에서 제공하지 않는 생필품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으며,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공간을 넘어 주민들이 패션을 향유하고 소비를 즐기는 등 문화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이로 인한 시장화는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장 내 부유한 신흥 상인 계층인 '돈주'가 부를 축적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정치 세력과 결탁하는 구조로 변질된 것이다. 또한 단속을 피하거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관료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심지어 고위 간부와 결혼해 정치적 보호를 받는 사례도 공공연한 일이 됐다.
보고서에 소개된 탈북민 A씨는 "사업을 크게 하는 상인들은 단속을 피하고자 관리소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뇌물을 줬다"며 "계속 뇌물을 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결국 상위 권력자들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고 증언했다.
상품을 운송할 때 사용하는 차량의 번호판을 구매하는 데에도 큰 비용이 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국가보위성(옛 보위부)을 상징하는 번호를 단 차량은 단속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탈북민 B씨는 "앞번호 21이 검찰인데 그 이하로 내려가면 보위부, 보안서다"라며 "그런 번호를 받아서 다닐수록 통제가 덜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시장화의 흐름에 뒤처진 주민들은 경제적, 사회적 기회를 철저히 박탈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물건을 판매할 매대를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격차는 매우 큰 것이다. 매대를 구매하고 관리비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소규모 장사꾼들은 관리자의 단속을 피해 이동하며 장사를 해야 하며, 단속에 걸릴 경우 생계 수단을 잃을 위험에 놓이게 된다.
시장을 통해 쌓은 자본으로 결탁한 권력을 등에 업고 재산을 증식하는 상인들도 있다. 탈북민 C씨는 "돈 장사 하는 사람들은 다 뒷배가 있다"며 "북한에서 제일 먼저 단속을 하는 게 돈 장사인데 '빽'을 써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시장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소득층은 외화나 미국 달러만 받는 상점을 이용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북한 원화로 일반 시장에서만 소비 생활이 가능한 식이다. 탈북민 D씨는 "평양에는 달러만 받는 식당도 많다"며 "같은 식당이라도 층별로 서비스와 가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일반 주민의 사적 달러 사용을 엄격히 단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평양의 국영 상점들은 고소득층 주민들에게 달러를 받고 북한 원화를 거슬러 주는 방식으로 사치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야망을 실현기 위해 외화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이같은 상황에 대해 "시장을 통해 생겨난 계층의 분화로 경제적 권력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향후 계급 간 이동이 더욱 제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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