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의 키워드는 '이재명'이었다. 권 원내대표는 연설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18번 언급하고, 국정 혼란의 주범으로 이 대표를 지목했다. 집권여당으로서 분권형 개헌, 연금개혁 ,추가경정예산 등 정책 아젠다를 띄우긴 했지만 그마저도 '야당 때리기'에 가려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일 옥중메시지를 여론전을 이어가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강성 지지층 결집을 의도하고 이 대표와 민주당의 책임론을 부각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권 원내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취임 후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12.3 비상계엄 선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납득할 수 없는 조치였다"면서도 "그런데 왜 비상조치가 내려졌는지 한 번쯤 따져 봐야 한다"며 그 이유로 거대 야당을 들었다.
권 원내대표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당사자인 윤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없이 모든 책임을 야당에 돌렸다. 그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정 혼란의 주범, 국가 위기의 유발자, 헌정질서 파괴자는 바로 민주당 이재명 세력"이라며 "국정 혼란의 목적은 오직 하나, 민주당의 아버지 이재명 대표의 방탄"이라고 비판했다.
구체적으로 "29번의 연쇄 탄핵, 23번의 특검법 발의, 38번의 재의요구권 유도, 셀 수도 없는 갑질 청문회 강행, 삭감 예산안 단독 통과. 이 모두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의회 독재의 기록이자, 입법 폭력의 증거이며, 헌정 파괴의 실록"이라고 지적했다.
권 원내대표가 이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자 여당 의원들은 "맞습니다"라며 박수로 호응했다. 반면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연설하는 사람이나 박수치는 사람이나 수준 좀 높여달라", "적당히 해야지", "부끄럽지 않나"라며 고성이 터져 나왔다.
권 원내대표는 이 밖의 다른 현안도 이 대표의 우클릭 행보와 엮어 직격했다. 그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최근 민주당은 난데없이 한미동맹지지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대표도 한미동맹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라며 "조기 대선을 겨냥한 위장 전술이다. 카멜레온의 보호색이 성조기 무늬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시장경제의 경우에도 "최근 이재명 대표는 실용주의를 표방한다.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다', '기본소득 재검토할 수 있다', '지금은 성장이 시급하다'며 자신의 과거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바꾼 말들은 언제든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포퓰리즘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시에 권 원내대표는 현안에 대한 입장도 내놓았다. 분권형 개헌과 의료개혁, 연금개혁, 추가경정예산, 반도체특별법 등 주요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 운영을 주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다만 이마저도 이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는 정치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개헌을 주장하며 야권에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권 원내대표는 "2022년 9월, 이 대표도 바로 이 자리에서 개헌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과 이 대표가 개헌을 외면하고 있다"라며 "대권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개헌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이 대표를 겨냥해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추경과 관련해선 "우리 당은 추경 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라면서도 "지역화폐와 같은 정쟁의 소지가 있는 추경은 배제하고, 내수회복, 취약계층 지원, AI를 비롯한 산업·통상경쟁력 강화를 위한 추경으로 편성해야 한다"라며 이재명표 정책'의 대표적인 예인 지역화폐를 지원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반도체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면서도 "민주당은 고임금 연구개발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시간의 예외를 주자는 법안을 끈질기게 거부하고 있다"라며 "주 52시간 규제에 집착하는 민주당은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뒤떨어진 정치세력"이라고 했다.
이날 권 원내대표의 연설을 두고 비상계엄 사태 이후 혼란한 정국을 책임져야 할 여당의 책임과 반성은 하나도 없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한 지지층을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엄경영 정치평론가는 이날 <더팩트>에 "윤 대통령이 지금 6:4 정도인 탄핵 찬반 여론을 5:5 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성격의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데 이날 연설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권 원내대표의 연설을 두고 "오직 궤변, 가짜뉴스, 변명으로 점철된 여당 포기 선언문"이라고 비판했다.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 삶, 나라의 미래를 열어갈 비전도 없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욕설·비난만 난무했다"며 "상대에 대한 비난,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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