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1일 정치 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으로 대통령·의회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제안했다. 연금 개혁과 관련해 야당이 요구하는 '선 모수 개혁' 수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과 관련해선 정쟁의 소지는 배제하고 내수 회복·취약계층 지원을 중심으로 편성하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먼저 12·3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소추, 구속기소와 관련해 사과부터 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의 불안과 걱정이 얼마나 크신지, 잘 알고 있다.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라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후 거시경제 안정과 집값 안정, 한미동맹·한일관계 복원 등 정부의 성과를 열거하며 "남겨진 국정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연설 초반부 야당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췄다. 현 국정위기의 원인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주당의 탓으로 돌리면서다. 권 원내대표의 발언 도중 여당 의원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했고, 야당 의원들은 "적당히 해라", "부끄럽지 않나"라며 항의했다.
그는 "지난 12.3 비상계엄 선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납득할 수 없는 조치였다"면서도 "그런데, 왜 비상조치가 내려졌는지 한 번쯤 따져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29번의 연쇄 탄핵, 23번의 특검법 발의, 38번의 재의요구권 유도, 셀 수도 없는 갑질 청문회 강행, 삭감 예산안 단독 통과. 이 모두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의회 독재의 기록이자 입법 폭력의 증거이며, 헌정 파괴의 실록"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국정을 혼란시키는 목적은 이 대표 방탄에 있다고 주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단언컨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정 혼란의 주범, 국가 위기의 유발자, 헌정질서 파괴자는 바로 민주당 이재명 세력"이라며 "국정 혼란의 목적은 오직 하나, 민주당의 아버지 이 대표의 방탄"이라고 지적했다. 또 "8개 사건, 12개 혐의, 5개 재판을 받는 이 대표의 형이 확정되기 이전에 국정을 파국으로 몰아 조기 대선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대통령직을 차지하려는 정치적 모반"이라고 설명했다.
권 원내대표는 정치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개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87년 체제 등장 이후 5년 단임제 대통령 8명이 있었다. 그중 3명이 탄핵소추를 당했고, 4명이 구속됐다"라며 "이것은 개인의 문제를 뛰어넘은 제도 자체의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릴 때가 왔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권력의 분산을 통한 건강한 견제와 균형의 회복"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제왕적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을 제한할 구조를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면 대권을 차지하기 위한 여야의 경쟁은 사생결단이 된다"라며 "극단적 정쟁이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계속된다"고 했다. 또 "지금처럼 야당이 의회 권력을 장악하면, 대통령의 실패가 야당 집권의 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사건건 국정운영을 방해하고, 파국으로 몰고 간다"고 부연했다.
권 원내대표는 야권에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그는 "2022년 9월, 이 대표도 바로 이 자리에서 개헌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과 이 대표가 개헌을 외면하고 있다"라며 "대권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대로 가면 다음에 누가,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총성 없는 내전이 반복될 뿐이다"라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연금 개혁 추진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고 했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일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금개혁은 기본 틀부터 바꾸어야만 50년, 100년을 지속할 수가 있다"라며 "그래서 국민의힘이 줄곧 모수 개혁과 구조개혁을 함께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익률이 높아야 연금재정도 건전해진다"라며 "연기금의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올리기 위해 세계적 인재를 불러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야당을 겨냥해 "여야가 특위 구성에 합의한다면 국민의힘은 모수 개혁부터 논의하는 것을 수용하겠다"라며 "그러나 반드시 구조개혁과 수익률 개혁 논의가 이어지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민생 추경과 반도체특별법 통과도 촉구했다. 그는 "우리 당은 추경 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원칙과 방향이 필요하다"라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삭감 처리한 올해 예산안을 원상 복원하고 보완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지역화폐와 같은 정쟁의 소지가 있는 추경은 배제하고, 내수회복, 취약계층 지원, AI를 비롯한 산업·통상경쟁력 강화를 위한 추경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도체특별법에 대해선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원내대표는 "전 세계에서 반도체 연구인력이 주 52시간 근무에 발목 잡힌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라며 "그런데, 민주당은 고임금 연구개발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시간의 예외를 주자는 법안을 끈질기게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을 향해 "주 52시간 규제에 집착하는 민주당은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뒤떨어진 정치세력"이라며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실용의 가치를 배신하는 21세기 쇄국"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