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여권 내 대선 후보들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딜레마에 빠졌다. 향후 당내 경선의 패권을 쥐고 강성 지지층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후보들 입장에서 그들이 지지하고 있는 윤 대통령과 섣불리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에 대해 굉장히 신중하다.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여당으로서 현직 대통령이 있는 상황에서 조기 대선 언급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탄핵심판 중이지만 현직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대선 이야기를 하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 공식입장과 별개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가 반환점을 돌면서 여권 대권 주자들은 하나둘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인용 여부를 기다렸다가 움직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조금씩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가는 취지로 보인다.
최근 범보수 진영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선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으면서도 윤 대통령을 비호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K-방산 수출 지원을 위한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제일 좋은 건 대통령이 빨리 복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엄의 정당성을 두고 "재판하기도 전 '계엄은 내란' 등식은 어느 법조문에도 없다.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 중 하나다"라며 사실상 윤 대통령을 옹호했다.
김 장관이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대선 물밑작업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제기된 데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김 장관은 "인사차 갔다"라며 "제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재임 중에나 임기가 끝난 후 감옥에 가는 불행한 일이 더는 없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에 공감해줬다"라고 설명했다. 면담에서 개헌과 계엄, 조기대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여권 내 대선 후보로 빠지지 않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탄핵 정국 이후 처음으로 국회를 찾는다. 오 시장은 오는 12일 국회에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를 연다. 그는 개헌 논의 뿐 아니라 연일 현안과 관련해 활발하게 입장을 내놓고 있다.
오 시장은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애매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탄핵에 공개적으로 찬성했던 오 시장은 최근 "윤 대통령은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며 한·일 관계를 회복했다", "견제 장치들이 우리 헌법에 있었다면 이재명 민주당의 의회 폭거, 탄핵 폭거가 대폭 자제됐을 것이고 윤석열 대통령의 무리한 계엄 선택도 없었을 것" 등 윤 대통령과 거리를 좁히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가장 먼저 출마 의사를 밝힌 여권 대선주자다. 홍 시장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나는 일관되게 탄핵을 반대해 왔고 윤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명제는 변함없다"면서도 "좌파의 집단적 광기에 휩쓸려 그게 무산이 되는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홍 시장의 부인 이순삼 여사는 지난 8일 대구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전한길 강사와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홍 시장은 비교적 노선도 선명한 편이다. 그는 지난 8일 페이스북에 "다툼의 여지가 이렇게 많은 사건인데 이 추운 겨울날에 현직 대통령을 터무니없는 혐의로 계속 구금하는 것은 법절차에도 맞지 않고 도리도 아니다"라며 윤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했다. 또 수사기관과 헌법재판소를 저격하며 강성 지지층 결집에 주력하고 있다.
등판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한동훈 전 대표의 행보도 주목된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기일이 마무리되는 때를 기점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최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등 정치권 인사들과의 회동을 이어가고 있다. 친한(친한동훈)계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 현재로선 조기 대선 국면 돌입시 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여권 주자가 당내 경선을 통과해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선 후보자는 당원 투표 결과 50%,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 50%를 반영해 최종 집계한다.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국민의힘 당원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대권 주자들이 당심에 반하는 행보, 즉 윤 대통령과의 고리를 끊어내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당원들이 뽑는 것이고, 그 당원들은 윤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라며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듯한 스탠스를 취할 순 있겠지만 결국 본질적으로는 어떤 후보라도 윤 대통령과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