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잘사니즘'(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새로운 비전으로 꺼내 들었다. 그간 강조해 온 '기본사회'라는 개념을 기초로 '성장'에 방점을 뒀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사실상 집권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주4일제 도입도 화두로 던졌는데 최근 반도체 분야 주52시간 적용 예외를 언급한 상황이어서 혼란을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역시 개헌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섰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사태를 '친위 군사쿠데타'로 규정하면서 계엄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경제를 수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 그래도 힘겨운 국민의 삶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며 "외신의 아픈 지적처럼 계엄의 경제적 대가를 오천만 국민이 두고두고 할부로 갚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과 함께 무너진 국격과 신뢰, 경제와 민생, 평화와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며 "국민들께 희망의 길을 제시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며 공정한 성장으로 격차완화와 지속성장의 길을 열어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시했던 '먹사니즘'을 한 단계 발전시켜 '잘사니즘'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제시했다. 그는 "새롭고 공정한 성장동력을 통해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해야만 함께 잘 사는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정치가 앞장서 합리적 균형점을 찾아내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는 진정한 사회대개혁의 완성 그것이 바로 잘사니즘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회복과 성장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기본사회' 개념도 꺼내 들었다. 이 대표는 "성장해야 나눌 수 있다. 더 성장해야 격차도 더 줄일 수 있다"며 "당력을 총동원해 회복과 성장을 주도하겠다.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 위원회를 설치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경제를 살리는데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 민생 살리는데 색깔이 무슨 의미인가"라며 "진보정책이든 보수정책이든 유용한 처방이라면 총동원하자. 함께 잘사는 세상을 위해서 유용하다면 어떤 정책도 수용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노동시간을 줄여 점차 '주4일 근무'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 대표는 "창의와 자율의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4.5일제를 거쳐 주4일 근무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특별한 필요 때문에 불가피하게 특정 영역의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더라도 그것이 총노동 시간 연장이나 노동 대가 회피 수단이 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경제 회복을 위한 성장 정책도 다수 제안했다. 이 대표는 △국가 AI데이터센터 설립 및 10만 AI전문인력 양성 △바이오산업 국가 투자 확대 △K-콘텐츠 세계화 지원 △방위산업 지속 발굴 △재생에너지 신속 확대 △제조업 부활 지원 등을 설명했다.
정년 연장도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이 대표는 "AI시대를 대비한 노동시간 단축, 저출생과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비하려면 정년 연장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직접 민주주의 강화를 강조하면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도 꺼냈다. 이 대표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책임지고 행동한 그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우리 공복들의 사명을 새기면서 민주적 공화국의 문을 활짝 열어가겠다"라고 말했다. 30조원 규모의 추경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이날 이 대표의 연설은 조기 대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민생 회복을 통해 중도층을 공략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본사회를 다시 꺼내 든 것은 우클릭에 몰두한다는 기존 지지층과 진보진영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정책적 방향성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4일제 역시 이와 맞닿아있다.
다만 반도체 분야 52시간 제외 등을 이미 언급했던 터라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게 기본적인 방향이지만 근로형태나 업종에 따라 예외를 두겠다는 의도지만 국민들에겐 메시지가 뒤바뀐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사회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민생을 살리는데 색깔이 무슨 소용이냐"라고 밝힌 것 역시 혼선을 불러올 수 있는 지점이다. 이 대표의 의도가 있는 발언이겠지만 국민에겐 그 의도가 무엇인지 와닿지 않을 수 있어 주장의 혼재로 비칠 수 있는 셈이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정치가 국민을 대변한다고 하더라도 정당의 대표는 정체성을 갖고 얘기해야 한다. 비슷하기만 하면 어떤 정책이든 받겠다는 얘기는 조급증의 일환으로 보일 수 있다"며 "표만 되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것으로 오히려 메신저의 오염을 느끼기 때문에 동원력과 확장에도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권동욱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 대표가) 또 한번 화려한 말의 성찬으로 모래성을 만들고 있다"며 "말만 앞서고 실천에 가로막힌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특별법이다. 이 법 하나를 놓고도 하루가 다르게 입장을 바꾸는 상황에서, 경제성장 담론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소환제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도입하기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데 이 대표와 민주당은 탄핵 국면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개헌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최 평론가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등 헌법을 바꿔야 하는데 이러기 위해선 개헌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답을 해줘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 주체가 스스로 국민 소환 대상이 됨으로써 정치 개혁을 한 단계 높이자는 차원"이라며 "일각에서 개헌을 얘기하는데 이미 법안이 제출돼 있어 입법 형식과 절차에 대해선 발의된 법안을 갖고 논의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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