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본격적인 '당 쇄신'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윤석열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 선을 긋고 부정선거 의혹 해소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쇄신보다는 여전히 윤 대통령을 비롯해 강성 지지층과의 결속에 여념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 비대위원장은 6일 취임 후 약 한 달 만에 '신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지금까지 당내 갈등 봉합과 화합에 중점을 둔 시간을 보냈다고 평가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일부에선 당의 변화와 쇄신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우선 당이 안정되고 화합하면 제대로 된 변화나 쇄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라며 "앞으로 당의 변화와 쇄신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 쇄신의 첫걸음으로 꼽히는 '윤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 선을 그었다.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보다 정부의 과오를 적극 개선해 나가는 게 당이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형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게 단절이고 쇄신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당을 쇄신하려면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 고치는 노력을 하는 게 단절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조치를 예로 들며 "(윤 대통령을) 출당시킨다고 단절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선거에 대해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식의 여론이 많고. 부정행위를 우려하는 분들도 많은 상황"이라며 부정선거 의혹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당내 관련 법안 발의 움직임에 대해 "기존 있었던 것에 대해 조사하고 처벌하고 고치기보단 그런 우려가 생기지 않도록 선거제도 자체를 정비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그런 차원이라면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고 밝혔다.
부정선거 의혹의 중심에 있는 사전투표와 관련해선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선거를 해보면 사전투표가 선거비용을 이유로 선거 기한을 제한해 놓았는데 10여일 이내 유권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결정할 충분한 시간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부정선거 의혹은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줄곧 계엄 선포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 요인인데, 권 비대위원장이 이에 힘을 실어준 모양새가 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출석해서도 '계엄을 선포한 건 부정선거 팩트를 확인하려 한 것'이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 보완과 부정선거는 엄연히 다른 내용이라는 게 당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간담회 이후 공지를 통해 "권 비대위원장은 타 모든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의구심을 가진다면 제도를 재고할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라며 "유권자의 알권리 보장과 informed decision(정보가 제공된 결심)을 위해 선거운동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간담회를 두고 당 지지율 상승세에 한 몫 하고 있는 윤 대통령을 끊어내지 못하는 국민의힘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다. 개혁을 다짐하면서도 지지율 상승에 크게 일조하는 지지층을 의식해 대통령의 탄핵 인용을 가정하는 조기대선 언급을 자제하고, 윤 대통령과의 거리 조절에 신중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 지지율 상승을 '야당의 행태에 의한 반사이익'이라고 평가하며 자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건 중도층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정당 지지도 관련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고 있긴 하지만 진보와 중도층에서는 여전히 정권교체 선호가 높다는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 비대위원장은 "우리 당 지지율이 계엄 직후에 비해 크게 올랐는데 저희가 잘했다기보단 계엄과 계엄 직후를 거치면서 야당의 행태가 그대로 드러나 야권의 행태에 실망하신 분들, 특히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에게 나라 맡길 수 없다는 국민들께서 힘을 모아주시는 것"이라며 "저희가 주제파악을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당분간 윤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가겠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했다"라며 "중도·무당층 이탈 움직임과 국민 비판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생색내기용 기자회견'을 했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과의 애매모호한 관계 설정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절차가 막바지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과 거리 두지 않으면서 쇄신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형용 모순이긴 하지만 2월까지는 이 스탠스로 계속 갈 것"이라며 "그럼에도 당의 향후 진로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비대위원장으로서 중도층을 의식한 공간을 열어두고 가는 듯한 뉘앙스도 보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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